▲ 손용환 영천시청 복지기획담당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한 각종 추념 및 보훈행사가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다.

영천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6·25 전쟁 시 북진 발판의 계기를 만든 영천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이고 일제강점기에는 산남의진 의병활동, 임진왜란 시에는 영천성 복성전투로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를 이루어낸 곳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호국 도시 중의 한 곳으로 여겨진다.

영천의 호국 역사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전세에 밀려 거의 나라를 내줄뻔한 위기에서 북진 발판의 계기를 마련한 영천전투가 대표적이다. 1950년 9월 5일부터 9월 13일까지 국군 제2군단 예하 제8사단 및 증원부대들이 영천을 점령한 북한군 제15사단을 9일간의 공방전 끝에 격퇴하고 영천을 탈환한 전투다. 만약 영천이 북한군에 점령될 경우 우리 국군이 제1군단과 2군단으로 분리되고, 낙동강 동서 보급로가 차단될 수 있었다. 영천전투의 승리는 인천상륙작전의 도화선이 되었고 대한민국 정부와 군대를 포함한 62만 명을 미국령 사모아도에 재배치해 신한국을 창설하겠다(New Koran Plan)는 계획을 무산시키고 국운을 살렸다.

그런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영천전투의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호국 충절과 안보의식 함양을 위해 시는 마현산 일원에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를 개장했다. 이곳은 지역 호국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타워 전시관과 국내 최대 서바이벌 체험장이 조성되어 있어 호국안보교육과 체험관광의 장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의 침탈에 항거하여 영천을 중심으로 경북 남동부 일대에서 위세를 떨친 ‘산남의진’ 의병활동도 호국도시 영천의 위상을 드높여 준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고종황제로부터 밀조를 받은 정환직이 국권 회복을 위해 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두 부자가 교대로 의병대장에 올라 항일전을 전개하다 순국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역사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16년 11월의 호국인물로 부자(父子)가 선정되어 전쟁기념관에서 현양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 더해 영천에는 국립영천호국원과 육군 3사관학교가 시와 연계해 호국안보스쿨, 안보캠프, 전국 서바이벌 게임대회 등을 개최하면서 군사도시 영천의 이미지를 호국안보테마관광 도시로 발돋움시키고 있다.

호국의 달 6월을 맞아 영천을 방문해야 될 이유가 또 있다.

고려말 포은 정몽주의 임고서원(임고면 양항리), 화약발명으로 왜구를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운 최무선 장군, 그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최무선과학관(금호읍 소재), 임진왜란 시 수군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가사문학의 대가 노계 박인로 선생, 그의 위패를 모신 북안면의 도계서원도 호국충절의 대표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6월이 다 가기 전에 호국 충절의 고장 영천을 방문해 나라사랑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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