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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트럼프가 은둔의 독재자 김정은을 국제 정치무대에 ‘평화 스타’로 깜작 등장시켜 준 회담에 불과했다.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은 이번 6.12 싱가포르 북·미회담 합의문에서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를 가져올 북핵 제거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있을 것으로 기대에 찬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북·미 정상이 내어놓은 회담 결과 발표문에는 미국 측이 회담 전날까지 줄기차게 외쳐온 북핵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비핵화와 관련한 내용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는 것뿐이었다. 합의문 공동성명의 4개 항 가운데 이 조항도 세 번째로 밀려 담겼다. 4·27 판문점 성명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문구와 판박이로 더 이상 진전된 것이 없다.

어떻게 보면 추상적 단어에 불과한 ‘완전한 비핵화’라는 단어가 판문점 성명과 싱가포르 회담에서 똑같이 사용됐다. 국민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몇 개월간 북핵에 대해 “빠른 시간 안에 핵 폐기”를 입에 달고 온 것에 기대를 걸었으나 언제까지 핵 폐기를 하겠다는 시한을 못 박은 내용은 공동성명에서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트럼프는 이번 비핵화 회담에서 그가 항상 주창해온 ‘미국 이익 우선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합의문 첫째 조항에서 △미국과 북한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 국민의 바람에 맞춰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다고 했다.양국 간의 관계 개선과 평화 구축이 이번 회담의 주 목적인 ‘북한의 핵 폐기’ 약속보다 우선하고 있다.

특히 동맹국 간에도 모든 거래에 ‘돈’을 최우선으로 하는 뱃속까지 장사꾼의 DNA가 녹아 있는 트럼프의 행태가 이번 회담 결과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 등을 들어 B2B 폭격기 등이 동원되는 대규모 훈련은 중단할 것이라고 폭탄 발언을 했다. 북한 측이 한미연합군사 훈련 때마다 눈엣가시처럼 반발을 보였던 한미연합훈련을 북한으로부터 비핵화에 대한 아무런 언질도 받지 않은 상태서 미국이 먼저 큰 선물을 안겨 주었다. 김정은으로서는 손대지 않고 코를 푼 파격적인 선물을 받은 셈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이 이복형을 죽이고 고모부까지 죄를 덮어씌워 총살형을 시킨 30대 초반의 무소불위의 독재자를 최고의 의전을 갖춰 파격적 대우로 만나주고 사전에 의제에도 포함되지 않은 한미연합훈련까지 중단하겠다는 큰 선물을 안겨 주었으니 이번 회담은 김정은이 일방적으로 실속을 차린 큰 성과를 올린 회담이었다.

더군다나 국제 정치 무대 경험은 중국과 판문점 이외는 없었던 김정은으로서는 트럼프라는 세계 최고의 정치적 파트너를 동반하여 싱가포르라는 화려한 국제무대에서 전 세계 언론의 조명을 한몸에 받은 ‘평화 스타’로 등장한 셈이 되었다.

미국의 대부분 언론은 트럼프의 이번 싱가포르 회담의 결과에 대해 “한마디로 알맹이가 빠진 합의”라고 혹평했다. 국제 북한 전문가들도 대부분 “북한은 이번 회담을 통해 체제 보장을 받았고 ‘완전한 비핵화’라는 추상적 단어는 합의문에 들어갔으나 구체적인 로드맵인 CVID는 빠졌다”며 “미국은 비핵화의 로드맵도 보지 않고 체제보장을 미리 해버린 모양새”라고 비평했다.

앞으로 남북대화가 봇물 터지듯 하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가 비핵화에 앞서 나가는 것은 꼭 삼가야 될 것이다. 핵 문제의 진전 없이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5천만 국민이 자칫 북한의 ‘핵 있는 평화’ 전술의 사냥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을 지켜본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적인 북·미회담 성공을 뜨거운 마음으로 환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알맹이가 빠진 이번 회담을 보는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은 과연 문 대통령의 감격스러운 반응과 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환영한다”고 하는지를 한번 물어보시길 바란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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