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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한 번쯤 거울 속의 나에게 말해보자. 넌 참 사랑스러워, 넌 참 대단한 사람이야, 라고. 이미 그래 본 적 있다면 알 것이다. 그 순간 스스로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으로 거듭나는지. 누구나 말하곤 한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잣대에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을 쉬지 않는다.

오늘 아침 외출 준비를 하면서 당신은 거울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셔츠와 맞는 바지를 고르느라 입었다 벗었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현관을 나서기 직전 신발이 적당한지 아닌지 곁눈질까지 하면서 몇 번이나 거울을 쳐다보았을까? 그러다 신발 때문에 다시 들어가 바지를 바꿔 입고 나오지는 않았을까. 그런 다음 아파트 화단에 핀 낯선 꽃들에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넌 참 예쁘구나, 옷 한 번 갈아입지 않아도 넌 그대로 참 예쁘구나, 어쩌면 그것은 그 꽃이 당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한 번쯤은 꽃의 말을 먼저 들어보자. 그 꽃은 부러운 눈초리로 당신을 향해 말할 것이다. 참 아름답습니다, 당신.

그러니까 이미 아름다운 당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 당신과 소통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다림질을 하고 루주를 바를 때를 생각해 보라. 이제 당신이 지나쳤던 스스로를 찾기 위해 이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당신을 위해 오늘은 아이크림을 바르고 굽 높은 샌들을 신어야 할 것이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오직 당신을 위해 거울 앞에 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아름다운 당신을 향해 서슴없이 칭찬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을 서랍 속 깊은 곳에 넣어뒀음에 대해 사과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사랑할 준비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 사과의 시간은 달라질 것이다. 당신과 당신의 눈이 마주치고 내가 참 아름답구나, 발견하게 된다면 그 화해는 성공적이다. 내일이면 또 다른 당신 하나가 스스로를 비관한다 하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본래 그런 것이다.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은 함께 간다. 소통이라는 말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당신과의 화해가 잘 이루어졌다면 이제 창문을 열고 하늘을 한 번 보라.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별빛 하나가 유난히 밝게 들어올 수도 있고 그 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 가로등 하나가 유난히 환하게 나무 그늘을 비추고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게 되는 눈은 당신이 당신과 소통하였기 때문에 오는 결과물이다. 이제 당신은 휘청거리며 지나가는 바람의 어깨를 쓸어줄 수 있을 것이다. 찬 빗방울을 향해 손등을 내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은 마음으로부터 온다.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해져 있으므로 그 어떤 폭풍 속에서도 당신은 뜨거울 수 있다.

그러니까 아침 드라마를 보면서 한숨을 쉴 필요도 없고 백화점 쇼윈도를 보면서 마음 불편해할 이유도 없다. 당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였다면 당당하게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당신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욕망의 주머니에 가득한 언젠가는 소멸하게 될 그런 소비물이 아니라, 당신과 영원히 공존하게 될 존재 그 자체인 것이다. 혹시라도 오늘 점심을 남편 자랑으로 일관하는 사람과 먹었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한마디도 할 이야기가 없었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 당신이 스스로와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 한 결국 승리자는 당신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면 스스로를 사랑하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온다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점검하면 된다.

다만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나를 사랑하되 이기적이기만 하다면 그것은 실패할 지도 모른다.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오직 나만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올바르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타인을 수용하기 위한 전 단계일 뿐 타인을 배척하기 위한 방어벽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 무엇이든 사랑할 준비가 끝났다면 자신 있게 거리로 나가라. 그리고 거침없이 실패하라. 치유가 필요하다면 제 자리로 돌아와 당신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김선동 kingofsun@kyongbuk.com

인터넷경북일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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