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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흔히들 인문학의 위기를 얘기한다. ‘문송합니다’는 작금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내보이는 문구다.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말뜻을 품었다.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 밥벌이가 쉽지 않다는 어감이 물씬 풍긴다.

문사철로 대변되는 인문학은 지성인이 지녀야 할 교양이다. 한데도 어쩐지 경시당하는 풍조가 안타깝다. ‘실패의 사회학’을 쓴 메건 맥아들조차도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다면 우선 스타벅스 매장에 자리가 있는지부터 알아보라”고 말했을 정도다. 서구의 인문학 위상도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언젠가 승용차 구입을 위해 상담을 하면서 그런 세태를 느꼈다. 견적서의 할인 내역을 보다가 그랬다. 노후차량 보유, 생산월별, 재구매 고객 할인에 이어 ‘공무원 특별 할인’이란 항목이 눈길을 끌었다. 공직에 근무하는 직계 가족이 있으면 추가로 감하는 체계. 할부가 아닌 일시불 구매임에도 그런 조항을 적용하는 게 의아했다.

다행히 그 혜택을 입긴 했으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물론 그럼직한 당위성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선뜻 수긍이 가진 않았다. 그것은 인문학적 시각으로 재단할 때 잘못된 제도라고 여긴다. 대출과는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업에 따른 차별이라는 게 개인적 의견이다.

당초의 기획자가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런 불공평한 감가의 함의에 대해 재삼 숙고했을 지도 모른다. 인간을 인간답게 꾸미는 감동의 학문이기에 그렇다. 독서와 더불어 일기를 쓰는 것은 인문 지식을 함양하는 훌륭한 장이라 생각한다.

문장은 의미가 동일하더라도 색다른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다. 바로 작가의 개성적 특색인 글을 쓰는 버릇이 상이한 때문이다. 사람은 독특한 말투가 있듯이 글에는 제각각 글투가 스몄다. 이를 고상한 표현으로 ‘문체’라고 한다.

문체는 다양한 형태로 분류된다. 문예 양식에 따라 운문체와 산문체로 나눈다. 운율을 갖춘 운문은 시와 동의어로 사용되나 일치하진 않는다. 고대의 언어 창작은 대부분 운문으로 서술됐다. 19세기 이후 문학의 주역은 내용을 자유롭게 묘사한 산문으로 바뀌었다. 소설은 그 대표적 갈래다.

산문의 일종인 일기는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감상을 적은 개인사 기록이다.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나 릴케의 ‘말테의 수기’ 그리고 카프카의 ‘일기’ 등 작품이 유명하다. 조선조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기행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최고의 일기장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아닌가 싶다.

언어 예술 가운데 심중을 가장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은 일기다. 거개의 글은 누군가를 대상으로 쓰지만 일기만은 예외다.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탓이다. 사적이고 내밀하면서도 솔직담백한 장르다.

단적으로 말하면 역사란 제각각 일상이 모여서 형성된다. 각자의 매일이 집적돼 기나긴 내력을 만든다. 누군가 하루는 거대한 폭포를 이루고, 아무개 오늘은 평범해서 그냥 잔물결로 흘러갈 뿐이다. 그럼에도 무의미한 인생은 없다. 나름대로 존재의 가치를 지녔다. 모든 생명의 흔적은 소중하기에.

일기를 쓴다는 것은 나의 서사를 간직하는 셈이다. 나만의 소소한 주름살을 새기는 행위다. 잠깐이나마 밤하늘을 보면서 세월을 되새김질하자. 온종일 정신없이 살아온 시간을 차분히 응시하자. 낭비와 반성이 다가오고 여백과 내일이 돋아나며 삶이 야채처럼 푸릇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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