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된 JP의 ‘화두(話頭) 정치’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80년대 잠깐 반짝했던 ‘서울의 봄’을 두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YS정부의 개혁 강풍을 빗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화두를 던졌다.

민자당 대표 시절 민주계 등의 협공으로 대표직이 흔들릴 때 ‘비방에 답하지 않는 자의 마음은 편안하다’는 ‘부대심청한(不對心淸閑)’과 ‘무슨 일에도 안색과 행동을 바꾸지 않고 의연하게 법도를 지킨다’는 ‘종용유상(從容有常)’을 화두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각제 추진을 포기, 자민련 의원들의 잇단 탈당에 대해 ‘기존 질서를 뒤엎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는 ‘조반역리(造反逆理)’를 화두로 이탈세력에 대해 경고를 보냈다. 이 화두는 중국 문화혁명 때 홍위병을 선동한 ‘기본질서를 뒤엎는 데는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조반유리(造反有理)’를 패러디 한 것이다.

1996년 총선의 해 신년 화두로 ‘출사무적(出師無敵)’이란 화두로 총선 승리를 다짐, 국회의원 29석으로 출범한 자민련이 총선에서 50석을 얻는 돌풍을 일으켰다. 1997년 대선의 해에 ‘어미 닭과 알 속의 새끼가 안과 밖에서 동시에 껍질을 쪼아야 새 생명의 탄생이 이뤄진다’는 뜻의 ‘줄탁동기(啐啄同機)’를 화두로 ‘DJ-JP연합’을 성사시켜 DJ대통령 당선을 성공시켰다.

‘나날이 새롭고 또 새로워 진다’는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 ‘생각함에 막힘이 없다’는 ‘사유무애(思惟無涯)’ 갈등과 분열, 마찰과 알력으로 만신창이가 된 정치에 대해 ‘화합하는 것이 가장 존귀하다’는 ‘이화위작(以和爲爵)’ 등 화두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 진로 구상 등을 고사성어에 함축돼 있는 의미를 담아 표현하는 능수능란한 화두정치는 JP의 타고난 낭만기질과 중학 때부터 하루 한 권씩 책을 읽은 풍부한 독서량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JP 자신도 읽고 배운 동양 고전 덕분이라 했다.

만년 2인자 ‘화두 9단’의 정치풍운아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영원히 잠들었다. ‘밤이면 더 밝게 세상을 비추는 촛불 역할’을 자임하면서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는 정치역정의 대미를 열망했던 JP의 정치인생은 그 자체가 서쪽 하늘에 붉게 타는 노을이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