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멌니껴?’ 지금도 안동 양반들이 길거리에서 만나면 하는 인사다. 밥 먹었는지 굶었는지가 곧 인사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이에게 ‘밥은 먹고 다니느냐?’며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뜨뜻한 밥 한 그릇 앞에선 눈 녹듯이 스르르 녹아내려 따뜻이 데워진다.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밥을 ‘한울’이라 했다. ‘한울’은 천도교 교리인 사람이 곧 한울님이며 만물이 모두 한울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의 요체다. 해월이 밥을 ‘한울’이라 한 것은 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해월은 “천지의 젖인 밥은 나누는 것이고, 함께 먹는 것이고,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시는 것”이라 했다. 해월은 또 “밥 한 그릇의 이치를 알면 세상만사를 다 아는 것”이라고도 했다.

오랜 기간 동학에 심취한 시인 김지하는 해월이 말하는 밥의 의미를 “밥은 육체의 밥, 물질의 밥이며, 동시에 정신이요, 영의 밥이다. 그래서 밥을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 밥은 밥상에서 나눠 먹게 되는 데, 이는 밥이 생명의 집단적이고 통일적인 순환, 전환, 확장활동을 상징한다”고 했다.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라 한다. 식구는 언제 어느 곳에 있어도, 심지어 죽음이 갈라놓더라도 따뜻한 그 정을 잊을 수가 없다. 갓 지은 밥을 크게 한술 떠 입에 넣으면 어머니의 뭉클한 사랑이 느껴진다.

18년 째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 아들에게 손수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이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70대 노모의 사연이 애틋하다. 노환을 앓고 있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노모는 굴곡진 가정사 때문에 법적 가족으로 이름도 올리지 못해 아들을 10분 남짓 면회만 가능해서 이 소원을 이룰 수 없었다. 이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박호서 대구교도소장이 유전자 검사까지 해가며 이들의 친모자 관계를 확인해 마침내 25일 온 하루를 같이 있을 수 있는 가족접견을 성사시켰다. 노모는 그제야 아들의 입에 손수 지은 따뜻한 밥 한술을 떠 넣어 주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밥이 하늘이라는 밥 한 그릇의 이치, 밥 한 그릇의 모정이 뭉클하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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