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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토요일 자정을 전후해 방영되는 EBS 프로 ‘세계의 명화’를 즐겨 시청하는 편이다. 공영 방송에서 엄선한 필름이라 후회할 확률이 낮다. 게다가 주말의 한밤중 동굴 속 어둠 같은 공간에서 몰입하는 시간은 행복감이 차오른다.

근래엔 미국의 대표적 장르인 서부 영화를 연이어 소개했다. 19세기 후반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이민자와 악당의 대결을 그린 내용.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음직하다. 제목만 들어도 죽마고우처럼 친숙하게 다가온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석양의 무법자’는 현상범과 공모해 현상금을 타서 줄행랑치는 얘기.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대사가 여러 차례 나온다. 목에 밧줄을 거는 이와 로프를 끊는 이, 친구가 있는 놈과 외로운 놈, 창문으로 넘어오는 박차와 대문으로 들어오는 박차, 총을 가진 자와 땅을 파는 자.

코믹을 곁들인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떠올렸다. 사회는 일기를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일상의 기록을 꾸준히 남기는 지인은 의외로 적었다.

이동순 시인이 지은 ‘아버님의 일기장’이란 시가 있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일기책이 소재인 작품. ‘모년 모일 종일 본가’라고 쓰인 메모가 전체의 팔 할이 넘는다고 읊는다. 온종일 혼자 집에 있었다는 뜻. 시인은 눈물짓는다. 그날도 어제처럼 짧은 글귀로 하루를 끝냈을 그분의 고독한 노후가 생각나서다. 한 편의 수필처럼 쉽게 읽히면서도 심금에 깊은 울림을 주는 시작.

일기는 자기 자신과 나누는 대화이다. 언어 예술 중에서 내심을 가장 솔직히 표하는 문학의 갈래.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자 함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던지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오직 진실이기에 그만큼 진가를 더한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전쟁터 지휘관 육필인 이충무공 일기엔 곤장을 때리고 목을 베는 사건이 자주 등장한다. 개인사와 상하 군인들 간의 갈등 관계도 적나라하다. 그야말로 생사가 걸린 싸움터의 단호 엄격한 장수의 기개가 넘친다.

나치 치하 독일서 태어난 유대인 소녀 안네는 이태 동안 은신한 일들을 적었다. 그녀는 비밀경찰에 발각돼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병으로 숨졌다. 아버지에 의해 출간된 ‘안네의 일기’는 베스트셀러로 히틀러의 만행을 알렸다. 당시 13세였던 여자애가 언제 붙잡힐지 모르는 와중에 성적인 호기심까지 묘사한 건 일기문이라 가능했다.

인간의 수많은 행위 가운데 일기를 쓰는 것은 장점이 적잖다. 특수한 상황의 서술은 후세에 전하는 역사적 가치도 갖는다. 안네의 일기처럼 말이다. 최고의 이점은 디테일에 충실해지는 관점이 아닐까. 현상을 대할 때 대충 넘어가기 보다는 정확한 사실을 알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지도자의 필력은 일부분 요구된다. 문무겸전의 이순신이나 카이사르를 대하면 자명하다. 기원전 5세기 중엽께 아테네 민주 정치의 황금시대를 이끈 정치가 페리클레스. 그는 언어 구사력이 탁월했다. 전몰자 추도사는 교과서에 실렸을 정도다.

문헌에 의하면 페리클레스는 시민 집회 연설을 앞두고 사전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자택에서 초고를 작성하고 다듬으며 원고를 완성했고, 그것을 숙지코자 낭독 연습을 하였다. 숙고를 거듭한 소통력 덕분에 전무후무한 32선의 스트라테고스로 명성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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