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연산군 하면 먼저 살상과 여색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살상 여색 못지않은 연산군의 대표적 이미지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독단’이다. 어전회의를 통해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기보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조건 밀어붙였다.

‘연산군일기’에 기록돼 있는 ‘한글사용금지령’도 독단의 대표적인 사례다. 대궐에 급히 들어선 외척 신수영이 연산군에게 익명으로 된 투서를 은밀히 보고했다. 한글로 쓰여 진 투서 내용은 “‘조방 덕금 개방 고온지 등의 의녀들이 우리 임금은 대체 어떤 임금이기에 신하 목숨을 파리 머리 끊듯이 죽이며 우리 임금은 여자를 가리지 않으니 조만간 우리 같은 의녀들도 궁궐에 불려가겠구나’고 했는데 왜 그런 사람들을 잡아들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연산군은 즉각 투서에 적힌 의녀들을 비롯, 투서 작성의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잡아와 국문했으나 모두가 모르는 일이라고 답변했다. 투서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연산군은 분기탱천, 도성의 문을 모두 닫아걸고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 데 이어 앞으로 누구도 한글을 쓸 수 없다는 ‘한글사용금지령’도 내렸다.

“앞으로는 언문도 가르치지 말고 배우지도 못하게 하며 배운 자도 쓰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언문을 아는 자를 한성의 오부(한성의 다섯 구획)에 신고토록 하고 알고도 고발하지 않는 경우에는 이웃 사람까지 함께 벌주라” 한글 금지와 관련 연산군이 내린 전교다.

한글금지령도 모자라서 한글로 토를 단 한문 서적도 불태우라고 명령, 연산군판 ‘분서갱유’를 단행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투서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엿새 만에 이 같은 전격적인 조치가 일사천리로 이뤄졌던 것이다. 백성들의 소통수단인 언어 생활과 관련된 민감한 조치들이 단시일 내에 진행된 것은 연산군의 독단정치가 어떠했는가를 입증해 준다.

아무런 공론화 과정도 없이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와 신규원전 백지화를 결정한 한수원 이사회의 독단은 한글사용금지령을 내린 연산군의 독단을 연상시킨다. 지방선거 압승 이후 곧바로 전격적으로 의결한 것도 연산군 시대를 빼닮았다. 탈원전으로 전기요금이 오르면 고통은 국민의 몫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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