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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승부에는 운세가 70%, 기술이 30%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고스톱과 같은 도박판에서 흔히 듣습니다만, 때로는 도박 이외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방면 등 일반적 입신양명과 관련해서도 많이 사용됩니다. 한 개인의 자질이나 품성, 능력이나 재주보다는 이른바 환경이나 시절 인연이라는 외적 요소가 성공이나 승리에 미치는 영향력이 월등히 크다는 것입니다. 운칠기삼이라는 7:3의 비율이 그런 뜻을 내포합니다. 갑절 이상으로 법(法)보다는 시(時)를 높이 칩니다. 그 말이 세력을 얻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진리치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크게 반발할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다만 이 말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정도의 ‘사용자 조건’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물론 성공을 목표로 내달리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것이기는 합니다만.

운칠기삼의 첫째 조건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을 모르는 자에게는 그 어떤 것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조급함을 멀리하고 평정과 인내를 바탕 삼아서 돌고 도는 운세가 자기에게 도착할 때를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때 이루어지는 ‘자기와의 싸움’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욕(私慾)과 정면으로 승부해서 반드시 이겨내야 합니다. ‘운칠(運七)의 신’은 가혹하리만치 냉정해서 자기와의 싸움을 기피하고 세간적 측면에서 근시안적 손익계산에만 몰두하는 자에게는 결코 자신의 손길을 내밀지 않습니다. 놀랄만한 도전의 기회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기다림도 모르고, 자기와의 싸움도 회피하면서, 오직 기적 같은 성공만을 꿈꾸는 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처절한 몰락뿐입니다. 그것이 ‘운칠의 세계’를 지배하는 첫 번째 율법입니다.

둘째는 믿음에 대한 믿음, 염력(念力)의 힘을 알아야 합니다. 운을 믿는 자가 되려면 우선 자신의 염력을 믿어야 합니다. 보통은 굳은 의지라고도 합니다만, 환경결정론을 신봉하는 운칠의 세계에서는 염력이라는 중화제가 반드시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만 필요한 균형이 유지됩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라’라는 주문을 수시로 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문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장면을 꾸준히 체크해야 합니다. 실패는 지우고 성공만 기록해야 합니다. 세간에서 ‘미쳤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염력 없이 기적 같은 성공만을 바라는 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인간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배신감뿐입니다.

운칠기삼의 세 번째 조건은 투신(投身), 몸 던지기입니다. 몰입, 몰두, 헌신(獻身)의 의미를 가지는 말입니다. ‘상대의 목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내 뼈 하나쯤은 줄 수 있다’라는 각오로 자신을 던져야 합니다. 그 경지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돌고 도는 운세의 흐름도 보이질 않습니다. 간혹 어쩌다 얻어 걸치는 짧은 행운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어쩌다 얻어 걸치는 짧은 행운은 인생의 독소, 마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잠시 그 시간이 지나면 연이어 닥치는 긴 불운의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투신 없는 인생은 오직 ‘평생 불행감’과 함께 할 뿐입니다.

이상의 요약은 대체로 세 가지 출전(出典)에 의지한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애, 제 실패 경험, 그리고 영화 ‘독전(毒戰)’을 보고 난 뒤의 개인적 감상입니다. 마지막 출전에서 한 마디 더 인용하겠습니다. 마약전쟁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서 ‘마약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형사의 질문에 어린 마약쟁이 소녀는 ‘세상이 X 같아서’라고 대꾸합니다. 그렇군요. 이렇게 공연히(법률용어로는 ‘여러 사람에게 대놓고’라는 뜻이랍니다) 운칠기삼을 왈가왈부하는 것도 ‘세상이 X 같아서’로 대변되는 그 지독한 불행감에 대응하는 일종의 마약 처방일 수도 있겠군요. 물론 세 가지 필수조건만 준수하면 마약이 아니라 명약(名藥)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칼럼은 지역신문잘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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