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인적 드문 날들 계속되었습니다. 골목은 고요하고

한없이 맑고 찬 갈림길이 이리저리 파여 있습니다. 나는 오랫

동안 걷다가 지치면 문득 서서 당신의 침묵을 듣습니다. 그것

은 당신이 내게 남긴 유일한 흔적입니다. 병을 앓고 난 뒤의

무한한 시야, 이마가 마르는 소리를 들으며 깊이깊이 파인 두

눈을 들면 허공으로 한줄기 비행운(飛行雲)이 그어져 갑니다.

사방으로 바람이 걸어옵니다. 아아 당신, 길들이 저마다 아득

한 얼음 냄새를 풍기기 시작합니다.





(감상) 전하지 못한 긴 연서(戀書)처럼 한번 고백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깊게 파인 상처로만 남은 사랑, 혼자 오래 걷다보면 대답 없는 침묵으로만 남아 그리움이 더 간절한 사랑, 혼자 끙끙 앓다가 허공으로만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사랑, 바람으로 인해 길들조차 훈풍(薰風)이 아닌 아득하고 차가운 냄새만 풍기는 사랑, 그대가 알든 모르든 간에 결국 나의 운명을 바꾸게 한 아픈 사랑이 아닌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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