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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1988년 7월 2일, 이날은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목숨을 빼앗긴 날이다. 열다섯 살 문송면은 협성계공이라는 회사에서 한 달간 일한 뒤 수은과 유기용제에 중독되었고 6개월 만에 사망했다. 88올림픽을 앞둔 시점이었고 곧 선진국으로 진입이라도 할 것처럼 분위기 띄우던 시점에 터진 직업병 참사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필자는 장례식 현장에 있었는데 참으로 마음이 슬펐다. 대한민국 이래도 되나 싶었다.

문송면은 시너로 물건을 닦아야 했고 온도계 만들 때 액체 수은을 주입하는 일을 했다. 입사한 지 한 달 된 시점부터 두통, 고열, 불면 등의 증세가 나타났지만 회사는 진상을 파악하려고 하기는커녕 문송면 군에게 회사 일 때문이 아니라는 각서까지 받아냈다. 문송면은 너무 아파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전신발작까지 났고 혈액에서 수은과 구리 성분이 검출되었다. 급성 수은 중독이었다.

올해는 원진레이론 직업병이 공론화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청소년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신경독성물질인 이황화탄소 중독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다. 장기간 파업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황화탄소 중독의 실태가 널리 알려졌다.

한겨레신문이 원진레이온을 1988년 7월 처음 취재했을 때 피해자가 12명인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수년 뒤 정밀조사 결과 무려 1000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직업병 판정을 받았다. 원진레이온 사태는 국내를 넘어 세계 최대의 이황화탄소 중독 사태다. 당시 노동부는 이황화탄소 중독 문제가 심각함에도 원진레이온에 무재해 기록증을 발급하였다. 노동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태롭게 만드는 시대였다.

‘죽음의 공장’으로 불리던 원진레이온에서 시작된 안전보건 시민운동이 지금까지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갈 길이 멀다. 문송면 죽음과 원진레이온 사태를 계기로 법과 제도가 도입되고 안전 점검 체계가 강화되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세계 제일의 산재국이다. 1957. 지난해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숫자다. 전년보다 10%는 수치다.

산재 사망률 세계 1위는 대한민국이 사람의 목숨을 우습게 안다는 것이다. 효율 제일주의와 성과만능주의에 빠져 산재 사망 사고를 성장의 부산물로 생각하는 사회가 되었다. 예전에는 한 해에 4000여 명이 사망했는데 이제는 그 절반인 2000명 정도로 줄어든 건 ‘큰 변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술의 진보, 민주주의의 성장, 안전의식의 확산에 따라 산재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똑바로 기억해야 할 점은 한국은 여전히 2위가 쫓아올 수 없는 ‘산재 1등 국가’라는 것이다. ‘한 해 산재 사망자 4000명 또는 2000명’은 반 생명 야만시대의 증표이다.

우리나라는 산재가 은폐된 나라로 유명하다. 사망 발생 건수는 객관적인 수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는 반면에 산재 발생 건수는 워낙 많이 은폐되기 때문에 객관적인 실상과 거리가 멀다. 은폐가 만연한 탓에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아도 산재 발생률은 터무니없이 낮다.

지금은 21세기다. 기업의 산재 은폐와 당국의 묵인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실상을 정확히 모르고는 원인 파악도 대책도 나올 수 없다. 실상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산재 사망자 절반으로 줄이기’ 같은 캠페인성 정책에 치중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산재는 계속되고 있다. 세 가지를 제안한다. 원청을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살인기업처벌법)을 제정하고 중대재해를 일으키는 기업에게 ‘강한 징벌적 배상’을 강제하는 법률을 만들자. 죽음의 외주화를 멈추고 다단계 하청구조를 혁파하자. 삼성반도체처럼 직업병에 대한 진실규명을 방해하는 기업의 이사진을 즉시 퇴출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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