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4방 절경 일품···산수미관 둘러싼 '상선암'서 쉬어갑니다

상선암 뒷편 마애 대좌불상.
경주 삼릉에서 금오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상선암’이 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쉬어가는 암자로 통한다. 8부 능선쯤인 이곳에 시원한 물이 있고, 멋진 산수미관(山樹美觀)이 둘러있기 때문이다. 고적한 산사보다 옆집처럼 편안해서인지 오르내리는 등산객들로 항상 시끌벅적하다. 일제강점기 때 옛 절터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조선 순조 때 임필대(1709-1773)가 지은 유동도록(遊東都錄·경주 유람기)에 ‘상선암에 오르면 앞쪽 하선암이 수석 사이에 있다’라고 썼다. 250여 년 전이니 그때도 옛 절 상선암이 있었던 모양이다. 스님들이 참선하던 곳으로, 산마루에 있다 하여 ‘상선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불사는 법당과 요사채 뿐인데, 등산길이 이 두 채를 갈라놓고 있다. 암자 뒤편에는 깎아지른 바위 군상과 틈새 멋진 소나무들이 조화를 이뤄 동양화 한 폭처럼 아름다운 산 풍경을 만들고 있다. 상사바위라고 부른다. 여기 남산 신(神)이 살고 있으며 남쪽엔 산신당(産神堂)이라 하여 아기 기도처가, 그리고 동쪽에 남근석과 감실이 있어 사랑하는 사람들이 빌면 사랑과 자식을 얻는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남산 삼릉골 미완성 마애여래좌상과 석조약사불상 터 표지.
계곡 길 따라 상선암을 100여m 앞에 두고, 10시 방향 숲 사이로 절벽 같은 큰 바위가 서 있다. 자세히 보면 그 위에 희미하게 선각된 마애불상이 보일 듯 말듯 윤곽만 나타나 있다. 길 따라 앞만 보고 걷다 보면 놓치기에 십상이다. 거대한 얼굴 윤곽과 어깨 부문만 선으로 새겨진 미완성 여래상이다. 제대로 선각되었더라면 어마하게 큰 여래가 천상으로 오르는 승천 대불처럼 환상적일 것이다.
남산 삼릉골 미완성 여래좌상 원경.

미완성 불상 바위 정상 우측에 잘생긴 석조 약사 불상이 있었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진열돼 있다. 1915년 조선총독부가 조선 통치5년 치적 홍보용으로 경북궁 특설미술관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열었다. 여기에 야외 장식용으로 전국 절터에서 18점의 불상을 수집해 왔는데, 이때 경주의 다른 불상 2점과 함께 차출된 것이다. 나중에 이 미술관이 총독부 박물관으로 바뀌고, 해방 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소속되면서 돌아오지 못하고 그대로 눌러앉아 있다. 보송한 얼굴에 통견을 하고 오른손은 항마촉지인,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다. 중대석 8면에 향로와 불꽃이 새겨져 있고, 광배엔 다섯 개의 화불과 불꽃이 조각된 예쁘고 아름다운 불상이다.

상선암 요사채 길옆에 깨진 큰 바위인 양 누워있다. 옷 주름과 영총이 희미한 선각으로 남아있어 보살임을 알 수 있다. 상체와 팔, 다리가 결실되어 형상은 알 수 없지만 5∼6m의 대불로 추정된다, 입석보살상이 넘어지면서 파손된 것 같다.

상선암에서 가파르게 오르면, 큰 바위 면에 조각된 대좌불이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큰 불두는 바위 밖에 높은 돋음 새김으로 튀어나와 있고, 법의와 손발은 선각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미소를 머금은 채 하화중생(下化衆生)을 기원하며, 하늘에 떠 있듯이 인간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불상 뒤편 상층 바위 군(群)을 ‘바둑바위’라고 한다. 신선이 내려와 남산 산천경계를 구경하며 바둑을 두었다는 곳이다. 또 신라 악상 옥보고가 거문고를 즐겨 켰다는 금송정(琴松亭) 터가 그 옆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 남산 4방과 멀리 경주 시내로 이어지는 풍경이 정말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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