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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경북을 걷다] 8. 경주 동남산 가는 길

불국토 향한 신라인의 염원 고스란히 녹아있는 '노천박물관'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등록일 2018년07월08일 16시51분  
서출지 전경
경주 남산은 남북(약 10km)으로 길게 누워있고, 동서(약 4km)로 봉곳 솟아있는 산이다. 남산이란 이름의 산이 여럿 있지만, 경주 남산은 숨 막힐 정도로 많은 유적이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산이다. 산의 규모나 크기로 보면 평범한 산 같지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실로 깊고도 오묘하다. 골짜기마다 물이 흐르고 바위마다 부처가 새겨져 있고 탑이 세워져 있다. 이처럼 신라인들에게 마음의 안식처였고 의지처였다. 그래서 신라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신성한 산이다.

선사시대 사람이 살았던 삶의 흔적인 선사시대 유적과 150여 곳의 절터, 130개의 불상, 99개의 탑, 13개의 왕릉 등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서로 어울리고 미소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하나의 거대한 야외 종합박물관이다. 남산을 가장 쉽게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래도 능선 아래를 따라 걷는 것이다. ‘동’남산 코스와 ‘서’남산 코스다. 모두 월정교 앞에서 출발한다. 동남산 가는 길은 월정교에서 염불사지까지, ‘삼릉 가는 길’로 불리는 서남산 가는 길은 월정교에서 용장골로 이어진다. 남산의 낮은 곳을 연결해 걸으면서 구석구석 마을과 들판에 자리 잡고 있는 문화재를 만나볼 수 있다. 동남산 가는 길을 먼저 소개한다.



남산 동쪽 문화유적을 잇는 둘레길이라는 의미로 ‘동남산 가는 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월정교에서 시작하는 이 길은 짧은 오르막이 두 군데 있을 뿐 대부분 남산 자락을 에둘러 가는 평지다. 도로와 연결되는 길을 나무 데크나 황톳길로 조성해 마음 놓고 주변 풍광을 구경하며 걸을 수 있다. 이정표가 잘 돼 있어서 길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없다. 월정교 남단에서 출발해 인왕동 사지(인용사지)~춘양교지~상서장~불곡마애여래좌상~남산탑곡마애불상군~보리사 미륵곡 석조여래좌상~경북산림환경연구원~화랑교육원~헌강왕릉~정강왕릉~통일전~서출지~남산동 동·서 삼층석탑을 거쳐 염불사지에서 마무리한다. 총 걷는 거리는 약 10㎞가 넘으며 4시간 안팎 걸리지만 문화재를 천천히 둘러 보려면 이보다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야 한다.

최근 복원된 월정교 모습
경주시 교동 월정교 남단에서 출발한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세기의 사랑을 나눴던 월정교 다리와 건물은 복원됐지만 지금은 건널 수 없다. 월정교 남단 도로 건너 검은 돌에 새겨놓은 이정표가 있다. 오른쪽(서쪽)은 삼릉을 거쳐 용장골로 이어지는 ‘삼릉 가는 길’이고 정면은 상서장을 거쳐 남산을 오르는 ‘남산 가는 길’ 표시가 돼 있다. 동남산 가는 길은 왼쪽 인용사지 방향으로 간다. 반월성을 끼고 도는 남천은 옛 모습을 잃었지만 문천도사(汶川到沙)라 해서 남천 8경에 넣었다. 길옆에 오랫동안 발굴했던 인용사지가 나오고 발굴 중인 반월성을 바라보며 잠시 걷는다. 월정교 건너기 전 오른쪽에 동남산 가는 길 안내도를 살펴본 뒤 남천따라 가다 보면 월정교와 짝을 이뤘던 다리인 춘양교지를 잠깐 보고 돌아 나오다 건너편에 공사 중인 경주박물관 영남권 수장고가 눈에 들어온다.



서라벌대로 고운교 아래를 지나 돌아 올라서면 상서장이다. 신라 말 대학자 최치원이 난국의 신라를 살려보려고 진성여왕에게 시무(時務) 10조를 올렸던 곳이다. 문이 잠겨 있다면 오른쪽으로 돌아가 최치원 선생 전시관을 거쳐 들어가면 된다. 경주에 있는 최치원 유적지인 낭산 독서당, 황룡사지 남쪽 미탄사지 근처 생가 등은 전부 산업도로 옆이라 차량 소음에 시달린다. 그래서 이 같은 것을 예견하고 말년에 해인사로 들어가버렸는지 모른다. 아래로 내려와 남천 따라 음지와 양지마을 걷다 보면 신라 문화연구에 헌신한 고청 윤경렬 선생 기념관이 있는 양지마을에 잠시 들렀다 간다. 다리 건너 곧바로 시멘트 농로 따라 남산 자락에 들어선다. 짧은 오르막 끝에 ‘금오봉·불곡석불좌상’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길에 닿는다.

불곡 마애여래좌상(감실부처)
왼쪽으로 가면 신라 초기에 만들어진 불곡마애여래좌상을 만난다. 감실에 들어 앉은 부처를 찬찬히 살펴본다. 수더분한 모습이 마음씨 좋은 이웃 할머니 같아 할매부처, 감실부처로 불렀던 것 같다. 배리삼존불, 경주국립박물관에 있는 삼화령 애기부처들이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불상들이다.
탑곡마애불상군
탑곡 마애불상군 전경
천천히 내려와 탑곡 마애불을 향해 걷는다. 나지막하게 경사진 오솔길 끝 계곡에 자리한 옥룡암이 옥룡사로 바뀌는 등 많이 변했다. 요사채인 삼소헌 건물과 추사가 쓴 일로향각(一露香閣) 현판은 그대로 있었다. 옥룡사는 근래 이름이고 신라 때는 신인사(神印寺)였다. 저항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육사는 투옥의 시달림에 요양 차 두 번이나 왔던 절이다. 대웅전 뒤로 올라가면 큰 바위에 다양한 불상 조각들이 새겨진 환상적인 분위기를 지닌 탑곡 마애불이 보인다. 탑과 불상, 스님상, 비천상, 사자상 등 온갖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절묘한 광경을 보여준다. 예전에 있던 소나무, 대나무, 벚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려 무릉도원 같은 분위기를 망쳐 놓았다. 속세의 느낌이 물씬 들어 이제는 찾아오기가 꺼려질 정도다. 북면은 좌우에 거대한 7층, 9층 탑을 세우고 중앙에 천개(天蓋)를 쓴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이 9층탑을 사라진 황룡사 9층 목탑의 형태로 추정한다. 위로 올라 남면과 서면, 동면에 새겨진 각기 다른 불상들을 살펴본 뒤 탑을 등지고 아래를 바라보면 자신이 지나온 여정이 한눈에 보인다.
감실부처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탑곡에서 내려와 보리사를 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을 가운데 있는 주차장에서 가파른 길을 오른다. 그 아름답던 소나무, 벚나무를 다 잘라버리고 대나무 숲 쪽으로 철망을 쳐 놓은 무지함이 아쉬웠다. 보리사는 아담하고 정갈한 절이다. 보리사 석불좌상은 남산에서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는 불상이다. 불상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기가 막히다. 천천히 돌면서 자세히 보면 삼성각 앞 두 그루 소나무 기상이 대단하고 멋지다. 내려오다 잠시 보리사 마애불에 올랐다. 이 마애불은 작지만 앙증스럽다. 이 조그만 바위에 신라인들은 어떤 심정으로 이런 불상을 새겼을까. 연초록으로 가득한 배반들녘이 장관이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갯마을을 벗어나면 오른쪽에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이다. 좌우로 다양한 수종을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어 아름답고, 겨울엔 비움의 여백이 있어 좋다. 화랑교육원을 지나 헌강왕릉 입구 솔숲으로 들어선다. ‘삼국사기’에 보면 헌강왕은 ‘총명하고 민첩하며 글 읽기를 좋아했다. 민가는 이어져 있고 노래와 피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나온다. 처용설화와 처용무로 널리 알려진 탓인지 보름날 무용하는 사람들이 와서 춤을 추곤 한다. 곧바로 정강왕릉으로 가는 오솔길로 들어선다. 헌강왕과 정강왕은 형과 동생 사이로 886년 26세에 형이 먼저 죽고, 다음 해 동생이 죽었는데 세상 뜬 날이 7월 5일로 같다. 보름달이 뜬 날 여기오면 이리저리 휘어진 소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이 너무 아름답다.

솔숲을 따라 내려와 통일전 지나면 이내 서출지가 나온다. ‘삼국유사’에 나온 사금갑(謝琴匣) 이야기로 인해 서출지로 부르고 있다. 원래는 ‘안못’이었다. 여름이면 백일홍과 연꽃, 이요당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볼만하다.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새로 만든 길 따라 가면 전탑 형식이 남아있는 남산리 3층 쌍탑이 나온다. 남산마을 사이를 지나간다. 8, 90년대 초까지 옹기종기 정겨운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국적 불명의 이상한 큰집들이 지어져 고졸한 맛이 없다. 근래 새롭게 단장한 염불사지가 반겨준다.
염불사지 삼층석탑
원래 마을이 피리마을이었고 절 이름도 피리사(避里寺)였다. 이 절에 염불을 아주 잘하는 스님이 있어 그를 염불사(念佛師)로 불렀는데, 염불 소리가 얼마나 깊숙하게 울려 퍼졌는지 서라벌 시내까지 들렸다고 한다. 2009년 탑을 복원한 뒤 염불 스님 별명을 따 피리사를 염불사로 고쳐 부르고 있다. 지금은 어느 절이나 직접 외는 염불 소리는 끊어진 지 오래다. 조그마한 절에서 나는 저녁연기와 허공에 울려 퍼지는 스님의 청아한 염불소리는 그 자체가 극락인데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중간중간 남산 언저리에 의지한 채 소박하게 살아가는 정겨운 마을과 번잡하지 않고 각각의 개성 있는 주인공들이 기다리고 있는 남산 동쪽을 향해 걷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길이다.
▲ 글·사진=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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