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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숲이 그리워질 때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등록일 2018년07월10일 18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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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어떻게 살 것인가’는 고금불변의 인생 화두입니다. 지역마다, 시대마다 선호되거나 통용되거나 권장되던 ‘잘 사는 법’이 조금씩 다릅니다. 제가 어릴 때 자주 듣던 것 중에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노래가사로도 사용되었고요. 과거 한 시절, 우리 땅에서는 그런 출세지상주의가 ‘잘 사는 법’의 하나로 권장되었습니다. 요즘은 좀 달라졌습니다.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큰돈을 벌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빛나는 명예를 얻는 일도 물론 좋지만 자기만의 만족을 구하며 ‘작은 일에도 의미를 두는’ 성실한 삶의 태도도 그에 못지않은 행복한 삶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저 역시 나름의 소확행에 몰두해온 인생행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면에서도 가끔 말씀을 드린 적도 있습니다만 글쓰기와 검도가 제 작은 행복의 꾸준한 공급처가 되고 있습니다. 저 혼자 하는 것도 즐겁습니다만 그것을 통해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소확행 이웃’을 얻는 일도 꽤나 즐거운 일입니다. 페이스북 같은 열린 공간에 매일 한두 편씩 단상(斷想)을 담은 글을 발표하기도 하고(‘좋아요’를 받고요),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으로 검도를 보급하는 일에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것이 제 소확행입니다. “돈 안 되는 일에 왜 그렇게 목을 매느냐?”는 핀잔을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그것으로 ‘출세’를 꾀하는 건 아니냐는 오해도 받은 적이 있었고요. 그러나, 소확행이 날로 세력을 얻고 있는 지금 그런 억울한 대접을 받는 일은 아예 없습니다. 많이들 좋게 봐줍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소확행과 비슷한 것이긴 하지만 조금 다른 것에 ‘작은 숲(Little Fores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확행이 일종의 삶의 행동지침이나 태도를 지칭하는 말이라면 ‘작은 숲’은 그런 자기만족의 삶을 가능케 하는 적극적인 환경의 조성이나 자연 친화적 삶의 방향성까지를 내포하는 다소 포괄적인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일종의 상징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명의 영화가 있는데 영화사의 줄거리 소개말로 어원설명을 대신하겠습니다.

“작은 숲 속 코모리 마을, 도시에서 불현듯 고향으로 돌아온 이치코는 자급자족 생활을 시작한다. 무더운 날의 식혜, 가을의 밤조림, 겨울의 수제비 핫또부터 다시 돌아온 봄의 감자 샐러드까지. 직접 농사지은 작물들과 채소로 매일 식사를 준비하고 먹으면서, 음식에 얽힌 엄마와의 추억과 잊고 지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영화는 두 개의 서사축(敍事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먹고 살기’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같이 살기’ 이야기입니다. ‘먹고 살기’ 축을 따라서는 다양한 일본의 토속 요리가 소개됩니다(한국판에서는 한국 음식으로 대체됩니다). 맛난 음식들을 만드는 방법들의 요모조모가 영상미학적으로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쾌감을 느낍니다.

‘같이 살기’ 축을 따라서는 마음과 행동을 함께 나누는 두 명의 또래 친구들과 동네 어른들과의 공동체 생활이 따뜻하고 차분하게 묘사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잘살아 보고 싶은 인간의 소망을 배신하고 삶의 환멸을 선사하는 현대 경쟁사회의 치부가 잘 드러납니다. 자연 친화적 농경사회가 그런 스토리텔링을 자연스럽게 뒷받침합니다. 제겐 그쪽이 더 좋았습니다. 타지사람인 이치코의 어머니가 남편과 사별하고 굳이 남편의 고향에 내려와 딸을 성장시킨 이유가 바로 그 ‘같이 살기’의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는 영화의 주장이 제겐 좋았습니다. 젊어서 아이들을 키울 때 그 비슷한, 절실한 심정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소확행과 작은 숲,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이 땅의 우리에게 내린, 작지만 알찬, 신의 축복입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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