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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대표·언론인

12일로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린 지 한 달째를 맞았다.

싱가포르의 화려한 야경처럼 말의 성찬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트럼프 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비핵화 회담이 시간이 갈수록 과정이 용두사미가 되고 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박 2일 일정으로 지난 6일부터 7일까지 평양을 방문,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앞으로 있을 비핵화 절차 회담을 논의했으나 결과는 미국 언론들의 예측대로 빈 깡통으로 드러났다. 110㎏이 넘는 거구로 오는 11월 있을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 선물을 안겨 주겠다는 욕심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평양 순항 공항을 밟은 폼페이오는 땅을 밟은 그 순간부터 북한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폼페이오 일행은 당장에 첫날 밤에 묵을 숙소가 어디인지조차 모른 상태로 회담에 임했으며 백악관과의 전화 통화도 실내에서의 도청이 의심돼 건물 밖으로 나와 하는 등 행동에도 부자연스러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이틀에 걸쳐 장장 9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벌인 폼페이오와 김영철 간의 고위급 회담은 폼페이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초라한 모습 그 자체가 회담의 결과였다. 폼페이오가 평양을 떠나며 “비핵화 시간표에 진전이 있었다”고 긍정적인 회담 내용의 결과문을 발표했으나 수행취재를 했던 미국의 언론은 일제히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기사로 도배질을 했다. 폼페이오의 발표가 있은 직후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의 담화를 통해 “미국은 일방적이고 강도(强盜)적인 비핵화 요구만 들고 나왔다”고 원색적으로 미국 측을 비난했다. 협상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깃장을 놓는 북한의 고전적 수법이 이번에도 또 등장한 것이다. 폼페이오는 북측의 비난에 “우리의 요구가 강도 같은 것이라면 전 세계가 강도다”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그는 한·미·일 3국 외교 장관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때까지 대북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수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한국석좌는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회담을 진전을 이뤘다고 했지만 돼지에게 립스틱을 칠하려는 것”이라며 실익이 없는 것을 과대포장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대북 초강경 보수파인 해리 카 지아니스 미국국가이익센터(CAI) 국방연구국장은 “미국은 달갑지 않은 세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군사공격. 둘째는 최대 압박 정책으로 회귀. 셋째는 북한을 핵무장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의 언론들도 북한 외무성의 담화에 대해 “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자주 볼 수 있었던 북한의 대미 독설과 악담을 상기시킨다”며 앞으로의 회담 전망을 어둡게 보았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대체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회담이 답보 상태로 되돌아 간듯한 지금 미국은 북한 측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올해부터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키로 했으며 우리 정부도 정부 주관의 훈련인 을지연습을 올해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여당인 공화당 내부에서는 한·미훈련 재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한 측의 비핵화 의지가 없어 보이는 시점에서 한·미 공조를 더욱 공고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미 공화당의 기류다.

평양회담을 마치고 워싱턴에 귀환한 폼페이오 장관도 12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갈 길이 멀다”면서 “변화는 북한 측에 달렸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CVID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핵 폐기)는 앞으로 갈 길이 험난함을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의 하늘에 드리워진 북한의 핵 그림자가 언제쯤 걷힐지 아득하기만 하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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