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서는 해와 달의 빛이 없어졌다

사천왕사지

총장(總章) 무진(戊辰; 668년)에 문무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인문(仁問)·흠순(欽純) 등과 함께 평양에 이르러 당(唐)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은 고장왕(高藏王)을 잡아 당나라로 돌아갔다(보장왕인데, 왕의 성이 고씨이므로 高藏이라 했다. <당서(唐書)> 고종기(高宗紀)를 상고해 보면, 현경(現慶) 5년 경신(庚申;660년)에 소정방 등이 백제를 정벌하고 그 뒤 12월에 대장군 계여하(契如何)로 패강도(浿江道) 행군대총관을, 또 소정방으로 요동도(遼東道) 대총관을 삼고, 유백영(劉伯英)으로 평양도(平壤道) 대총관을 삼아서 고구려를 쳤다. 또 다음 해 신유(辛酉) 정월에는 소사업(蕭嗣業)으로 부여도(扶餘道) 총관을 삼고, 임아상(任雅相)으로 패강도(浿江道) 총관을 삼아 군사 35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게 했다. 8월 갑술(甲戌)에 소정방 등은 고구려와 패강(浿江)에서 싸우다가 패해서 도망했다. 건봉(乾封) 원년 병인(丙寅;666년) 6월에 방동선(龐同善)·고임(高臨)·설인귀(薛仁貴)·이근행(李謹行) 등으로 이를 후원케 했다. 9월에 방동선이 고구려와 싸워서 패했다. 12월 기유(己酉)에 이적(李勣)으로 요동도 행군대총관을 삼아 육총관(六摠管)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게 했다. 무진戊辰(668년) 9월 계사(癸巳)에 이적이 고장왕을 사로잡아, 12월 정사(丁巳)에 황제에게 바쳤다.

상원(上元) 원년(元年) 갑술(甲戌;674) 2월에 유인궤(劉仁軌)로 계림도(鷄林道) 총관을 삼아서 신라를 치게 했다. 우리나라 <고기(古記)>에는 “당나라가 육로장군 공공(孔恭)과 수로장군 유상(有相)을 보내서 신라의 김유신 등과 함께 고구려를 멸망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인문과 흠순 등의 일만 말하고 유신은 없으니 자세히 알 수 없다.

신라 사천왕사 녹유신장상

이때 당나라의 유병(游兵)과 여러 장병(將兵)들이 진(鎭)에 머물러 있으면서 장차 우리 신라(新羅)를 치려고 했으므로 왕이 알고 군사를 내었다. 이듬해에 당나라 고종(高宗)이 인문 등을 불러들여 꾸짖기를, “너희가 우리 군사를 청해다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서 이제 우리를 침해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하고 이내 원비(圓扉)에 가두고 군사 50만 명을 훈련하여 설방(薛邦)으로 장수를 삼아 신라를 치려고 했다.

이때 의상대사(義相大師)가 서쪽으로 유학(留學)하러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인문을 찾아보자 인문은 그 사실을 말했다. 이에 의상이 돌아와서 왕께 아뢰니 왕은 심히 걱정하여 여러 신하들을 모아 놓고 낼 방법을 물었더니, 각간(角干) 김천존(金天尊)이 말했다. “요사이 명랑법사(明朗法師)가 용궁(龍宮)에 들어가서 비법(秘法)을 배워 왔으니 그를 불러 물어보십시오.” 명랑이 상주하여 말했다. “낭산(狼山) 남쪽에 신유림(神遊林)이 있으니 거기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우고 도량(道場)을 열면 좋겠습니다.” 그때 정주(貞州)에서 사람이 달려와 보고했다. “당나라 군사가 무수히 우리 국경에 이르러 바다 위를 돌고 있습니다.” 왕은 명랑을 불러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어찌 하면 좋겠는가고 물으니, 명랑이 여러 가지 빛의 비단으로 절을 가설(假設)하면 될 것이라 하였다. 이에 채색 비단으로 임시로 절을 만들고 풀[草]로 오방(五方)의 신상(神像)을 만들었다. 그리고 유가명승(瑜伽明僧) 열두 명으로 하여금 명랑을 우두머리로 하여 문두루(文豆婁)의 밀법(密法) 지었다. 그때 당나라 군사와 신라 군사는 아직 교전(交戰)하기 전인데 바람과 물결이 사납게 일어나서 당나라 군사가 모두 물속에 침몰(沈沒)되었다. 그 후에 절을 고쳐 짓고 사천왕사(四天王寺)라 하여 지금까지 단석(壇席)이 없어지지 않았다.

이상 문무왕이 등극한 이후,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다음에는 당나라의 침입을 막는 이야기를 구체적이며 담담하게 적고 있다. 문무왕의 이름은 김법민인데 태종 무열왕인 김춘추의 아들이다. 김인문은 그의 동생이며 훌륭한 외교관이고 문장가였다. 김흠순은 김유신의 동생이다. 당나라를 백제와 고구려를 없앤 후 이젠 본격적으로 신라까지 삼키어 동방을 모두 평정할 야욕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데, 신라가 천하의 대국 당나라의 침략을 어떻게 막아내는지 긴장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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