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도 / 저런 짐승이 한 마리 있다
끈이 풀리면 휑하니 달려나가 / 어두운 공기 속을
미친 듯이 쏘다니다 돌아와야 / 맺힌 데가 풀리는


짐승, / 짐승으로 돌아가
야생의 풀냄새에 코를 처박고 갈기털을 흔들고 싶은 날
이 있다. 가축으로 살기 이전에 맡았던 흙의 향기 그 숫된
향기가 흘러나오는 바람의 방향을 따라 쏜살같이 질주하고
싶은 날이 있다. 황음의 골짜기를 누비고 다니던 날처럼 네
발로 달려가고 싶다. 목뼈에서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빗방
울의 난타에 젖으며 척박한 데를 쏘다니고 싶다.


말없이 개밥그릇 옆에 턱을 고이고 땅바닥에 배를 깔고
있다가 밥그릇을 발로 차고 문을 뛰쳐나가고 싶은 날이 있
다. 초원의 짐승이 되어 달려가고 싶은 날 천둥치는 자유의
들 끝에 서 있고 싶은 날이





(감상)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고 맺힌 데를 풀 곳이 없어서 이름하여 중년인가. 나도 개처럼 가출하고 싶은 심정이 자주 들 때가 있다. 가축으로 살기 이전, 즉 가족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일임을. 밥그릇을 발로 차야, 즉 직장에서 큰소리치고 사표를 던져야 가능한 일임을. 황음(荒淫)의 골짜기를 누비고 다닐 담대함을 지녀야 가능한 일임을. 나는 천사 일만하는 우직한 소가 될 수밖에 없나.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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