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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말했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는 육체의 눈만으로 보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보라고. 피상적 외관이 아니라 내재된 정신을 관조하라는 의미다. 문화는 아는 만큼 느낀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로마 여행을 꿈꾸는 사람은 역사 평설 ‘로마인 이야기’ 일독을 권한다. 15년에 걸쳐 15권을 집필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역저로,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괴테의 충고를 공감하게끔 만든다.

혹자는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저자는 허황된 전래나 증거가 빈약한 사료는 거두절미한다. 대신 나름의 논리로 독특한 해석을 시도하고 독자를 설득한다. 유려한 문체를 대하면 자신도 모르게 로마사의 매력에 빠져든다. 언젠가 콜로세움 앞에 섰을 때도 그랬다.

1200년간 존속한 로마를 일러스트 하나로 표현한다면 단연 콜로세움이다. 나의 서재 벽에도 밤하늘을 배경으로 우뚝한 페인텍스 한 점이 걸렸다. 보수 공사 중인 트레비 분수 근처 도로변, 꽁지머리를 한 거리의 예술가가 쪼그려 앉아서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앞쪽에 완성된 첫 작품을 진열해 놓고 두 번째 유화를 작업하는 중이다. 10유로 가격표가 붙었다.

욕망의 유혹에 덜렁 샀지만 행여 꾸겨질라 한국까지 공수하느라 온통 신경을 썼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웅장한 콜로세움의 자태와 페인트 분진 속에 몰두하던 미대생이 떠오른다. 두고두고 추억하는 멋진 소품이 고맙기 그지없다.

콜로세움은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경기장. 로마 제국 시절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건립했다. 그는 파탄한 국가 재정을 복구하여 최고의 국세청장감이라 평가받은 인물. 콜로세움은 미학적 면이나 기술적 면에서 최고의 걸작이었다.

각각의 층마다 기둥 양식을 달리해 변화를 주었고 아치형 외벽엔 입상을 설치했다. 군중이 모이는 장소라 사고 발생 시에 15분 이내 관객이 대피하도록 출입구가 배치됐다. 또한 강한 햇빛을 막고자 돛천으로 경기장을 덮었다. 지금의 콜로세움은 당시의 3분의 1 규모에 불과하다. 교회를 건축코자 시설물을 뜯어갔기 때문이다.

한데 역사적 사실이 이채롭다. 어머니 살해와 기독교도 박해 등으로 악정을 저지른 제5대 황제 네로. 콜로세움이 건설된 자리는 당초 그가 인공 호수를 조성할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서기 64년 7월에 발생한 대화재로 큰 상처를 입은 수도 로마. 도시 복구 사업을 펼치면서 네로는 ‘도무스 아우레아’라 불리는 도심 개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드넓은 인공 호수와 동물이 노니는 자연공원이 핵심이다. 하지만 공간 활용에 대한 의식이 달랐던 시민들은 반대했다. 도심의 푸르른 녹지보다는 경기장이나 목욕탕 같은 오락장을 원했다. 결국 후대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인공 호수 예정지에 콜로세움을 세우면서 박수를 받았다.

도무스 아우레아는 서기 68년 30세의 나이로 자살한 네로의 죽음으로 실현되진 못했다. 콜로세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구상대로 인공 호수가 출렁인다면 오늘날 로마 주민들 일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포항의 심장부라 칭하는 옛 포항역 철도부지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추진된다는 보도다. 세상사는 양면성이 존재하듯 이 역시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네로 황제의 이루지 못한 염원처럼 아쉬움이 남음은 나만의 단견일까. 회색빛 삭막한 도시의 풍경이 뇌리에 어른거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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