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몸과 마음이 가라앉아 차분해진다. 머리가 복잡하고 심란하면 방천시장 신천재방에 있는 김광석거리로 간다. 내 나이에 딱 인 ‘60대 노부부이야기’를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거닐면 인생박사가 되어 황혼의 찬란한 노을이 마음에 들어와 가슴이 벅차다.
보릿고개가 있던 근대화 시절 선거구호가 ‘배고파 못 살겠다. 죽기 전에 살길 찾자’로 끼니 해결도 어려웠다. 그 당시 초등학교 시절 월사금을 못 내어 벌서는 동무도 있고, 한 반이 70명이 되어 교실이 콩나물시루로 항상 시끄럽다. 새 교과서 구입은 열 명, 그 외는 헌책을 사거나 빌려 공부하는 가난한 시절이다.
책방에 가면 새 책방은 한산하고 헌책방은 인산인해다. 사고, 팔고 서서 보고하느라고 지나가다가 부딪친다. 만화가 단연 베스트셀러다. 외상으로 달아 놓고 빌려 아버지 모르게 잠 설치며 이불 속에서 숨죽이고 볼 정도로 재미가 넘쳤다.
공부도 공짜, 교과서도 무료, 밥에 우유로 간식도 거저인 지금, 그때와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한 반에 70명에 한 학년 7개 반 500여명 가량 되니 한 학년이 서울, 대구에 있는 큰 학교다.
6학년에 올라가니 졸업여행을 경주 불국사와 부산 동래 온천 간다고 열차 5칸을 전세 내 경북선 상주역을 떠난 증기기관차, 옥산역 구내 있는 급수탑에 물을 넣어야 김천 여남재 고개를 ‘칙칙폭폭’하며 숨 가쁘게 넘는다.
빗물을 먹은 수십 줄의 전깃줄이 달린 전봇대에 참새들이 앉아 재잘거리니 정겹다. 이 철길로 ‘전깃줄 따라가면 끝이 부산이겠지’ 하면서 지겨워 차창 밖 스쳐 가는 전봇대를 세려 보기도 했다. 대구 지나서 누가 ‘고모’다 큰 소리로 말하니 열차 탄 지 3시간 반, 다 졸다가 깨면서 소리 난 곳을 쳐다보며 두리번거린다.
창밖에 ‘고모’라는 나무에 쓰인 간판을 보고 소리를 질러 ‘고모님’이 아닌 고모역에서 모두 잠이 달아나 또 시끌벅적하더니 또 누군가 아하! 하니까 ‘아화’역 좀 더 가니 불국사역에 내렸다. 비가 오는 날 동녘을 바라보며 저곳이 고모역인데 넋두리를 한다. 지금은 건물이 들어서고 고개도 깎아 시가지로 변해 옛 향수로만 달랜다.
정교하게 조각되었다는 석굴암이 자랑스럽고 여관 한 방에 20여 명 포개어 새우잠 자는데 궂은 날씨 젖은 양말에 발 냄새까지 보태어 입 다물게 자는 고통 안 겪으면 모른다.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바깥에 나와 처음 보는 도로 위에 깔린 아스팔트가 신기하여 만져보기도 하고 뛰어보기도 한다. 쑥떡 같다며 혀를 대 보기도 했다.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 울려 퍼지면 ‘칙칙폭폭’ 증기 기관차 타고 졸업여행 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가난하여 나와 중학교 진학 못 한다고 울먹이든 친구 선하다. 무인 간이역이 된 경부선 ‘고모’ 동해 남부선 가는 ‘아화’역 차장에 스쳐 가는 엿가래로 늘어진 전깃줄을 짊어진 불쌍한 전봇대와 영영 잊지 못하는 빛바랜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