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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한 수필가
지지난 주 장마로 하루 종일 비가오더니 사흘이 멀다 하고 비가 자주 내린다. 대구에 이사 온 지 5년 되도록 비 보기가 귀한데 올해는 태풍이 일찍 와서 수시로 비가 내려 미세먼지도 씻겨가고 시원하기는 하지만 서늘하고 일조량이 적어 농작물 결실에 걱정된다.

비가 오면 몸과 마음이 가라앉아 차분해진다. 머리가 복잡하고 심란하면 방천시장 신천재방에 있는 김광석거리로 간다. 내 나이에 딱 인 ‘60대 노부부이야기’를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거닐면 인생박사가 되어 황혼의 찬란한 노을이 마음에 들어와 가슴이 벅차다.

보릿고개가 있던 근대화 시절 선거구호가 ‘배고파 못 살겠다. 죽기 전에 살길 찾자’로 끼니 해결도 어려웠다. 그 당시 초등학교 시절 월사금을 못 내어 벌서는 동무도 있고, 한 반이 70명이 되어 교실이 콩나물시루로 항상 시끄럽다. 새 교과서 구입은 열 명, 그 외는 헌책을 사거나 빌려 공부하는 가난한 시절이다.

책방에 가면 새 책방은 한산하고 헌책방은 인산인해다. 사고, 팔고 서서 보고하느라고 지나가다가 부딪친다. 만화가 단연 베스트셀러다. 외상으로 달아 놓고 빌려 아버지 모르게 잠 설치며 이불 속에서 숨죽이고 볼 정도로 재미가 넘쳤다.

공부도 공짜, 교과서도 무료, 밥에 우유로 간식도 거저인 지금, 그때와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한 반에 70명에 한 학년 7개 반 500여명 가량 되니 한 학년이 서울, 대구에 있는 큰 학교다.

6학년에 올라가니 졸업여행을 경주 불국사와 부산 동래 온천 간다고 열차 5칸을 전세 내 경북선 상주역을 떠난 증기기관차, 옥산역 구내 있는 급수탑에 물을 넣어야 김천 여남재 고개를 ‘칙칙폭폭’하며 숨 가쁘게 넘는다.

빗물을 먹은 수십 줄의 전깃줄이 달린 전봇대에 참새들이 앉아 재잘거리니 정겹다. 이 철길로 ‘전깃줄 따라가면 끝이 부산이겠지’ 하면서 지겨워 차창 밖 스쳐 가는 전봇대를 세려 보기도 했다. 대구 지나서 누가 ‘고모’다 큰 소리로 말하니 열차 탄 지 3시간 반, 다 졸다가 깨면서 소리 난 곳을 쳐다보며 두리번거린다.

창밖에 ‘고모’라는 나무에 쓰인 간판을 보고 소리를 질러 ‘고모님’이 아닌 고모역에서 모두 잠이 달아나 또 시끌벅적하더니 또 누군가 아하! 하니까 ‘아화’역 좀 더 가니 불국사역에 내렸다. 비가 오는 날 동녘을 바라보며 저곳이 고모역인데 넋두리를 한다. 지금은 건물이 들어서고 고개도 깎아 시가지로 변해 옛 향수로만 달랜다.

정교하게 조각되었다는 석굴암이 자랑스럽고 여관 한 방에 20여 명 포개어 새우잠 자는데 궂은 날씨 젖은 양말에 발 냄새까지 보태어 입 다물게 자는 고통 안 겪으면 모른다.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바깥에 나와 처음 보는 도로 위에 깔린 아스팔트가 신기하여 만져보기도 하고 뛰어보기도 한다. 쑥떡 같다며 혀를 대 보기도 했다.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 울려 퍼지면 ‘칙칙폭폭’ 증기 기관차 타고 졸업여행 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가난하여 나와 중학교 진학 못 한다고 울먹이든 친구 선하다. 무인 간이역이 된 경부선 ‘고모’ 동해 남부선 가는 ‘아화’역 차장에 스쳐 가는 엿가래로 늘어진 전깃줄을 짊어진 불쌍한 전봇대와 영영 잊지 못하는 빛바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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