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법 제1형사부

남편과 장애를 앓는 4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가 홀로 살아남은 30대 여성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대구고법 제1형사부(박준용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의 형을 받은 이모(33·여)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80시간의 심리치료강의 수강 명령 판결을 내렸다고 15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 1월 30일 남편 A씨(사망 당시 40세), 아들 B군(사망 당시 4세)과 포항 북구 청하면의 한 펜션 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 안에서 수면제를 먹고 착화탄을 피웠다. 아들에게는 수면제를 태운 요구르트를 먹였다. 남편과 아들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졌지만, 이씨는 홀로 살아남았다.

이씨는 2009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뇌 병변 4급 장애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간호해왔고, 남편 A씨는 장인이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받은 7000만 원, 아들의 후유장애 보험금 1억1000만 원, 주택담보대출금 8000만 원 등 모두 3억 3000만 원의 돈을 주식으로 모두 탕진했다.

희귀한 유전적 질환을 안고 태어난 아들은 뇌 병변 1급과 언어장애 1급의 상태로 누워 지내는 상태였다. 출생 직후부터 신생아 중환자실 치료비 등 매달 100만 원 이상을 쏟아붓는 데도 차도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절망감과 우울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심신이 극도로 쇠약진 상태에서 삶을 비관한 이씨는 남편과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가 아들 치료에 전념하는 등 힘겨운 과정에서도 부모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온전히 다해왔고, 남편의 잘못된 제안과 설득을 이기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결심을 하기는 했지만, 남편이 구체적 행위를 직접 실행한 점을 참작 요소로 봤다. 실제로 이씨는 남편에게 맡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장소로 정한 승용차 안으로 먼저 들어가 수면제 등을 먹고 잠이 들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누구보다도 큰 괴로움과 깊은 죄책감, 회한을 느끼고 있고, 평생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유족인 피해자 고모들도 평소 피고인 부부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 선처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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