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47㎝에 체중 45㎏. 치매 초기 증상이 있는 85세 할머니는 119 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당시 이불에 덮인 채 옆으로 웅크린 자세로 누워 있었다. 통증 자극에만 반응하는 의식 수준으로 혈압은 비교적 정상이었으나 맥박수가 증가한 상태였다. 이불에는 피를 토한 자국과 할머니의 윗니 틀니, 머리카락 뭉치 2점이 남아 있었다. 2015년 10월 2일 밤 10시 53분 할머니의 아들 A씨(63)가 “엄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어예”라면서 119에 신고했다. A씨는 노모를 10년 이상 모시고 살았다. 다음날 새벽 1시 20분 의사는 폭행이 의심된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새벽 2시 15분께 경찰은 감식을 통해 제3자의 침입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틀 뒤 뇌와 척수 손상으로 인한 심폐기능정지로 숨을 거뒀다. 부검 결과 머리와 얼굴에 골절과 출혈, 왼쪽 눈을 둘러싼 뼈 위쪽 부분 골절, 목 부분을 형성하는 뼈 구조물인 경추 5번 골절, 몸통과 팔·다리 출혈 등으로 나타났다.

할머니를 죽인 범인으로 몰린 A씨는 존속상해치사죄로 기소돼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징역 6년을 받았고, 항소심 재판부는 4년을 더해 징역 10년을 판결했다. 그는 “어머니를 폭행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범행을 줄곧 부인했다.

부검의는 법정에서 주먹으로 때리거나 이불이 깔린 바닥에 부딪히게 하는 등 강한 외력에 의한 상처로 보이고, 스스로 넘어진 게 아니라 패대기를 친다거나 머리를 박게 해서 넘어지는 과정에서 경추 골절이 생길 수 있다면서 ‘폭행’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법의학자의 판단은 정반대였다.

왼쪽 눈 위에 피부가 찢어진 상처와 경추 골절의 경우 대부분 추락이나 넘어질 때 일어나고, 이불 위 혈흔이나 피해자의 머리카락 두 뭉치가 발견된 사실을 근거로 A씨가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잡고 머리를 뒤로 젖힌 후에 방바닥에 강하게 내리치는 방법으로 상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의견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발이 걸려서 앞으로 넘어지기 시작해서 장롱 벽 아래쪽에 이마를 부딪치면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경추 골절이나 안구 손상, 두피하출혈 등이 한 번에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장롱 문짝이 안으로 밀려들어간 흔적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뇌진탕으로 뇌압이 올라가면서 극심한 두통에 시달린 할머니가 머리를 뜯은 것으로 보이고, 아무리 노인이라도 자기를 죽이려고 때리는 경우 죽을 힘을 다해 막는데, 방어흔적이 전혀 없다”고도 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범행했음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부족하고, 다른 원인에 의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고 사망했을 가능성을 확실히 배제할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또 “오랜 세월 함께 생활한 친어머니를 때려 숨지게 하는 반인륜적 범행의 경우 동기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하는데, 뚜렷한 동기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검사도 공소사실을 기재할 때 피고인이 어떤 동기로 범행했는지를 명확히 하지 못한 데다 구체적 폭행 방법 역시 객관적 증거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추정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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