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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외재(畏齋) 정태진(丁泰鎭)

고성환 문경지역 위원회 위원·문경문인협회장 등록일 2018년07월22일 15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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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환 문경지역 위원회 위원·문경문인협회장
문경에는 선비들이 도(道)를 구현하기 위해 설정하고 경영한 구곡(九曲)이 8개나 있어 전국에서 으뜸이다. 백두대간이 100km를 달리면서 그 줄기들이 남으로 뻗쳐 골짜기를 이루고, 그 골짜기마다 계곡을 이루어 사계절 물이 흐르니, 그곳마다 굽이굽이 선경(仙境)이 펼쳐진다. 이를 어찌 그냥 두고 볼 것인가? 나물 먹고 물 마시며 자족하던 우리 선비들에게 이 경치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공부하며 찾던 극처(極處)와 합치되었으니, 그 구비 마다 학문으로 대구(對句)하여 이름을 짓고, 이를 구곡이라 했다.

이런 구곡문화를 발견한 분이 문경 출신 김문기 전 경북대 교수였다. 김 교수는 ‘경북의 구곡문화’를 발굴해 2권의 책으로 낸 것을 비롯해 ‘문경의 구곡문화’라는 책도 내 일찍이 구곡문화를 전파하기 시작했고 문경에 사는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공부했다.

그중에 현재 그 형태가 가장 잘 보존돼 있는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선유구곡’을 공부하며 구곡시가를 남긴 분으로 외재(畏齋) 정태진(丁泰鎭) 선생을 만났었다. 그런 분이 한 분 있어 구곡시가 한 수를 남겼다는 정도로 배운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마성면지’ 편집을 책임지게 돼 올해 초부터 여러 문헌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30여 권의 관련 지리지, 향토지를 읽으면서 1980년 초 고(故) 임병섭 선생이 쓴 ‘문경군지’에서 ‘마성의 인물’로 이외재 선생을 발견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문경문화원이 발간한 ‘문경의 금석문’에서 마성면 모곡리에 있는 외재 선생의 묘표(墓表)를 발견했으며, 2000년 고 박철순 선생이 발간한 ‘마고성면’이란 책에 외재 선생이 이 마을에서 학당을 운영해 많은 제자를 길렀다는 기록도 발견했다.

가슴이 떨렸다. 구곡시가를 남긴 분이 마성면 인물이라는 사실에 먼저 놀랐다. 그리고 그런 분을 마성에서 자란 60전 후 우리 또래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그보다 앞서 마성면 소재지인 모곡리 마을을 조사한 바 있었다. 집집마다 찾아가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었는데, 그때 빈집으로 남아 있던 그럴싸한 고택을 주소만 파악하고,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는 말만 귓등으로 들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외재 선생의 후손들을 찾아 수소문한 끝에 그 집이 바로 외재 선생 집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외재 선생의 손자 건영(建榮) 선생과 전화 통화를 했더니, 할아버지 외재 선생과 선생의 부친, 본인 등 3대에 걸쳐 70년을 거주했으며, 자신은 이곳에서 초등학교와 중등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 선생님의 연세도 어언 90세. 1929년생이시라고 했다.

건영 선생의 말씀에 의하면 자신들의 본래 고향은 영주시 줄포리(현재 가흥2동)로 다산 정약용 선생과 같은 나주 정씨로 대사헌공파이며, 외재 선생은 1919년 3·1 만세운동 후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한 유림의 ‘파리장서’에 서명한 137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러니 그대로 고향에 머물러 살 형편이 못 됐고 안거처를 찾다가 이곳 문경시 마성면 모곡리를 택하고 1940년경 마성으로 이사를 오셨다고 했다. 건영 선생의 부친은 고향의 가산을 정리해 마성에 대토하고 생활했으며, 할아버지 외재 선생은 나중에 오셔서 학당을 열어 강학을 하는 한편, 저술에 힘썼다는 증언을 하셨다.

그 저술이 1961년 외재 선생이 돌아가시고 2년 만에 ‘외재문집(畏齋文集)’으로 발간됐는데, 이 문집의 발문(跋文)을 외재 선생의 제자로 우리나라 한문학 태두였던 연민(淵民) 이가원 선생이 썼다. 그리고 그 저술 속에 ‘선유구곡시가’가 들어 있고, 마성과 관련된 시문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을 문경의 문화지킴이인 ‘문경문화유적회’ 오석윤 회장과 문경구곡원림보존회 창설자인 이만유 선생, 문경시 학예연구사 엄원식 계장에게 알리고, 우선 선생의 안거지인 마성면 모곡리 빈 저택을 청소하기로 했다. 집안에 들어설 수 없도록 자란 수풀을 베고,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 외재 선생의 행적과 역사를 팻말로 세워 그 가치를 지역사회에 알릴 작정이다.

향토사를 정리하면서 이렇게 묻힌 사실을 발견하고 보니, 아직도 조사하지 않은 남은 마을들에 어떤 이야기가 또 있을 것 같아 가슴이 설레고, 마성면과 면민들이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마당을 펴 준 것이 한량없이 고맙고, 그 노력이 더없이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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