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경 변호사.png
▲ 박헌경 변호사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7월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주의적 경향이 곳곳에 들어가 있다”면서 그 사례로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특별법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이 특례법에 대하여 “학교 사정에 맞게 하면 된다. 이런 부분까지 국가가 들어갈 필요가 있느냐? 참여정부 같았으면 노무현 대통령이 이 법안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국가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를 인간 사회의 가장 우월적인 조직체로 생각하고 국가권력이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을 인정하는 주의를 말한다. 국가주의의 반대는 자유지상주의, 아나키즘(무정부주의) 그리고 개인주의가 있다. 국가주의는 좋은 의미에서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공공선을 추구하려는 사상으로서 공공선은 국가 구성원 개개인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주의의 발전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발전이지만 그 혜택의 상당 부분이 국민 개개인에게도 돌아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국가주의는 권위주의 또는 전체주의라는 극단적 사상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국가의 혜택이 다수의 국민이 아닌 특정한 소수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많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애국심이라는 미명하에 권력자 개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의 역할을 가능한 한 최소화해서 개인 및 사회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주의는 국가주의와 대립한다. 최근에 베스트셀러 작품 중 하나였던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도 국가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이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의 독재나 권위주의를 옹호하고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강조하여 자유주의 이념과는 모순된 국가주의 사고방식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북한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의 압제를 겪은 전쟁세대들이 공산당의 압제를 다시는 되풀이 겪지 않고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수호하여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따라서 반공이 곧 자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스탈린, 마오쩌뚱 및 김일성의 공산주의는 공산당이 국가의 절대권력을 장악하고 경제를 통제하며 자본가계급을 억압하여 자본가와 지주의 사유인 생산수단과 토지를 인민에게 나누어주어 인민을 자본가계급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생산수단과 토지를 빼앗아 국가와 공산당의 국유로 전환하였을 뿐 민중은 해방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공산당이라는 국가주의의 통제하에 장악되었을 뿐이다.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계급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처럼 공산국가에서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공산당에게 복종해야 하기 때문에 공산국가에서의 공산당은 노동자계급의 대변인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을 대체하는 ‘새로운 지배계급’이라고 한다.

국가주의에는 국가사회주의도 있고 국가자본주의도 있다. 국가사회주의는 국가가 주가 되는 사회주의로서 독일의 나치즘도 국가사회주의의 일종인데 독일의 국가사회주의에는 포퓰리즘적 복지정책이 많았다. 즉 노동자들에게 유급휴가를 주고 정부지출을 통하여 부를 재분배하고 소비촉진을 통하여 경제성장을 견인하려 하였다. 이에 반하여 국가자본주의는 국가가 주가 되는 자본주의로서 자본주의적 계획경제제도라고도 하는데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국가통제주의적인 대량의 국유화정책을 말한다. 공산국가에서는 이를 신경제정책이라고 부르는데 덩샤오핑의 중국식 사회주의도 신경제정책으로서 국가자본주의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제를 시장의 자율에 맡기느냐 아니면 국가가 주도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사상과 이념에 따라 차이가 많다. 시장경제의 자율에 모든 것을 맡길 때 개인의 이기심을 통하여 경제성장을 가져올 수 있으나 천민자본주의의 병폐로 소수에게 부와 자본이 집중되고 빈부의 격차로 불공정하고 부패한 사회를 가져오게 되고, 반면에 국가가 경제의 모든 분야에 관여하여 주도할 때 권력을 가진 새로운 특권 소수층에게 부와 자본이 집중되기 쉽고 분배는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으나 성장은 어려워진다.

소득의 재분배와 혁신성장을 말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성장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경제가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경제를 주도하기보다는 시장의 창의와 자율에 맡기고 규제를 완화하여 기업가 정신이 꽃필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고 다만 시장의 불공정하고 실패한 부문에 대하여는 국가가 간섭하여 사회적 약자를 도와줌으로써 시장경제 성장의 혜택이 국가 구성원 개개인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할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