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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건물 밑을 지날 때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누군가가 건물에서 무언가를 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기사 댓글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 걸 보면 나만 그러는 게 아닌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앞을 똑바로 보고 걸으라는 말을 들으면서 컸는데 이제는 앞도 봐야 하고 뒤도 봐야 하고 옆도 봐야 하고 위도 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누가 언제 무엇을 던질지 모른다. 사실 위쪽을 쳐다본다고 해서 화를 피할 수는 없다. 낮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물건은 너무 임박해서 떨어지기 때문에 피할 시간이 없고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물건은 가속도 때문에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위를 살피게 되는 이유는 영문도 모르고 다치고 싶지는 않은 일종의 본능의 발로다.

떨어지는 종류도 다양하다. 벽돌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의자에 조각장, 심지어는 아령에 식칼까지 떨어진다. 예전에 고층 아파트 앞을 지나는데 뭐가 철퍼덕 소리가 나서 보니까 물풍선이다. 이미 터져버려 물 따로 풍선 조각 따로 노는 모습이었다. 직접 맞았더라면 아마 병원으로 직행했을 거다. 그것도 재수가 좋을 때 이야기다. 뇌진탕 증세가 왔을지도 모른다. 풍선 떨어지는 소리를 듣자마자 위를 올려다보았지만 아무 흔적도 없었다.

우리나라에 수십 층 높이의 아파트가 생긴 게 불과 20~30년 전이다. 높은 아파트에서 물건을 누군가 던지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되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누가 높은 아파트에서 뭔가를 던져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없다. 실수로 물건이 떨어지는 경우는 있어도 누군가 일부러 물건을 던지거나 던져보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이제는 시민들이 두려움에 휩싸일 만큼 ‘물건 던지기’가 빈빈해지고 있다.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현상이다.

지난 5월 평택의 한 아파트 앞을 지나던 50대 여성이 위에서 떨어진 아령에 맞아 어깨를 다치고 갈비뼈가 부러졌다. 몸을 단련시키고 체력을 높일 수 있는 고마운 존재가 인명을 해치는 무기로 변한 경우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령을 고발해야 하나? 아령의 소유자를 고발해야 하나? 아령이 흉기로 변했다는 이유로 아령을 모두 없애자고 말해야 하나? 아령이 사람을 해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제 역할을 하게 하는 건 오로지 사람의 몫이고 더 정확하게는 그 사회의 몫이다.

건물에서 물건을 던지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 실제 죽은 사람도 여럿 있다. 장애로 평생 고통 속에 살게 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도 생긴다.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사람이 죽었는데 책임질 수 있는가. 장애가 발생할 경우에도 책임질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예방이 최선이다. 임시방편에 머무는 경찰의 홍보활동, 예방활동 강화 방침을 넘어 실질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은 안 되고 있다.

벽돌을 떨어트리고 아령을 떨어트리는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이해하거나 이른바 ‘촉법소년’(만 10세-13세 어린이로 형을 면함)이 한 거라면서 팔짱 끼고 있을 일이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 국회는 머리 싸매고 국민과 함께 지혜를 모으고 어떤 경우도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물건 집어 던지기’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함께 공유하고 널리 알리는 건 물론 법적인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물건을 던진 자녀의 부모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의무화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없던 위험 요소가 등장하면 국가가 나서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문제가 나타날 때 해결하라고 있는 게 국가다. 걸을 때마다 위를 쳐다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국가가 나서서 해결책을 내야만 한다. 적어도 해결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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