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준수 순회취재팀장
7월 13일의 일이다. 쉬는 날인 금요일 이것저것 살피기 위해 대구경찰청 기자실을 찾았다. 아내가 주말 나들이 등을 다닐 때 입으라고 사준 반바지를 입고서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이런 마음이었다. 휴무일인데 반바지쯤은 괜찮겠지…. 반응은 두 갈래였다. “아무리 더워도 기자가 반바지를 입느냐”와 “속이 시원하다. 부럽다”. 시원하자고 입은 반바지 때문에 덥기만 했다.

폭염 도시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의 공무원들은 여름철 에너지 절약 등을 내세우며 ‘복장 간소화’라는 걸 한다. 5월에 시작해 9월까지 적용하는데, 넥타이나 재킷 대신 반팔 셔츠나 면바지, 블라우스 등 가벼운 옷차림으로 더위에 맞서기 위해서다. 관공서의 적정 실내 온도는 28℃인데, 30년 전에 정부가 그렇게 정했단다. 바깥 온도는 40℃에 육박하는 데 현실과 안 맞다. 피부 온도를 2℃ 낮춰준다는 쿨 맵시(시원 차림)에다 책상 아래 선풍기를 무기로 내세워 가마솥더위 대구에서 그렇게 여름을 난다. 아마도 반바지와 샌들, 민소매 티셔츠가 간절할 것이다.

공무원들이 반바지를 입으면 비난을 받기도 한다. 7월 1일 그랬다. 충북의 한 단체쟝이 취임식 대신 태풍 쁘라삐룬 북상에 대비해 상습침수지역 등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간부공무원이 반바지와 샌들 차림으로 현장에 나타났다. 공무원의 도리를 벗어난 행동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당 공무원은 “비가 많이 내려 바지와 신발에 흙이 많이 묻어 부득이하게 반바지와 샌들을 착용했다”고 해명해야 했다.

10년 전 대구에서도 반바지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2008년 7월 15일 서구청은 반바지와 샌들 출근을 허용했다.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반바지나 칠부바지를 입고 근무하면 어떻겠냐’면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응답자 241명의 절반이 넘는 62.7%(151명)가 찬성했기 때문이다. 민원인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민원 부서는 제외하고, 내근 부서에 한해서 시행했다.

당시 반바지와 샌들 차림으로 출근했던 허종훈(48) 주무관은 “공직사회에서 반바지와 샌들 착용은 당시 매우 신선한 시도였다. 특히 보수적인 대구에서의 시도라서 더욱 그랬다”면서 “몸도 가벼워지고 근무능률도 올라 매우 좋았는데, 보여주기식으로 반짝 시행하고 끝내버려 아쉬웠다”고 했다.

당시 부구청장으로서 구청장 권한대행을 했던 류한국 서구청장은 “대구처럼 더위가 극심한 지역에서 반바지, 샌들과 같은 발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더운 동네나 시원한 동네나 공무원들의 외형이 같으면 너무 일률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의 복장에 대한 억압적인 인식, 품위를 요구하는 목소리 등으로 찬반논란이 불같이 일어서 반바지 착용이 힘을 잃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공무원만 형식의 틀에서 찜통더위를 이겨내라는 말은 극기훈련 하라는 거나 다름없지 않느냐”고도 했다. 또 “대구의 다른 구청장, 군수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공감하는 분들이 많다면 다시 한 번 검토해볼 작정”이라고 덧붙였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공무원들에게 반바지 출근을 권장한다. 2014년 11월 24일 파마 머리로 파격 변신을 했던 권영진 대구시장도 그렇게 나서주면 어떨까. 머리 손질 시간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긴 했지만, 당시에는 권 시장이 변화와 혁신을 위한 의지 표현으로 파마했다는 촌평이 나오기도 했다. 파마했던 것처럼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반바지를 먼저 입어줬으면 한다. 대프리카의 공무원들을 위해서.

배준수 순회취재팀장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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