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여름 최고 피서지' 의성 빙계계곡 가보니

지난 20일 오후 39도의 폭염을 잊은 채 풍혈 앞에서 낮잠을 즐기는 피서객들.
110년 만에 찾아온 찜통더위로 바람 한 점 없는 낮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초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이럴 때는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보다 자연풍이 최고다. 복(伏)더위에도 바위 사이에서 찬 바람이 솔솔 나온다는 ‘풍혈’(風穴)은 폭염에도 더 할 수 없는 최고의 피서지가 된다. 자연의 신비를 체험하며 무더위도 함께 날릴 수 있는 ‘빙계 8경’이 있는 의성군 의성군립공원 빙계계곡을 찾아가 봤다.

지난 20일 오후 2시 빙계계곡 주차장에 도착하니 숨이 턱턱 막히지만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계곡에 피서객들의 물놀이가 한창이었다. 이날 의성의 날씨는 39도, 도롯가 작은 바위마다 삼삼오오 돗자리를 깔고 대부분 낮잠을 즐기고 있어 조심스럽게 지나다 보니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피서객들에게 뭐하시느냐는 질문에 잠시 앉아보란다. 앉는 순간 머리를 바위틈에 들이대자 냉장고 문을 열고 냉동실에 얼굴을 들이민 듯한 냉기가 바위틈 사이에서 쏟아져 나왔다. 놀란 내 모습을 보고 노부모를 모시고 피서 온 가족들이 깔깔 웃어대며 이 바람이 풍혈이라고 했다. 피서객 김중서(울산시·63)씨는 “이 날씨에 얼음이 얼었고 바위 구멍마다 신기하게 에어컨 바람이 나온다”며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이상한 나라, 사실인데 사실이 아닌듯한 별천지에서 꿈을 꾸는 듯하다” 고 말했다.

풍혈은 깊은 땅속에서 바람이 불어 나오는 구멍과 구멍을 통하는 마치 구부러진 굴뚝 모양이며 연중 3∼4도로 일정해 여름에는 외부 온도가 높아 시원함을 느끼고 겨울에는 기온이 낮아 따뜻함을 느낀다.

안내도를 따라 서너 채의 촌집을 지나 나지막한 언덕에 오르니 빙산사지 5층 석탑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높이 8.1 m의 석탑은 통일신라 말기에 제작됐고 감실에 있던 금동불상은 일본이 가져갔다고 전한다.

지난 20일 얼음이 얼어있는 빙혈 동굴에서 피서객이 한기를 체험하고있다.
빙계계곡 바위틈마다 냉기를 뿜어내고 있지만 풍혈을 찾아 이동 중인 등줄기에는 또 땀이 범벅됐다.

동굴 입구에 도착하자 대리석에 빙혈(氷穴)이라 새겨진 보였다. 땡볕에 시달린 터라 서슴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높이 1.8m에 2평 남짓한 공간이다. 키 큰 사람이라면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다.

동굴은 한여름에도 평균 3~4도가 유지된단다. 동굴 옆쪽에 작은 동굴이 하나 더 있다. 그곳에는 얼음이 있었다. 두 동굴을 잇는 통로는 위쪽에 달린 창문이었다. 아래쪽은 출입문이 잠겼다. 작은 동굴은 어른 3명이 제대로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좁았다. 은은한 조명 아래 얼음덩이가 벽 곳곳에 붙어 있다. 머리를 집어넣으니 에어컨 바람처럼 시원한 기운이 강하게 나온다. 겨울엔 오히려 따뜻한 공기가 나온다고 하니 참으로 신비롭다.

동굴 벽에는 논어 ‘학이’편 문구와 반야심경, 천부경이 새겨진 대리석이 박혀 있다. 지역 유지들이 빙혈 포장공사를 하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뿜어지는 냉기에 5분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춘원 이광수는 소설 ‘원효대사’에서 신라 무열왕의 둘째 딸인 요석 공주가 젖먹이 설총을 데리고 원효를 찾아 풍혈로 들어왔다고 썼다. 이광수는 “풍혈이 얼마나 깊은지 아는 사람이 없고, 저승까지 닿았다”고 동굴의 신비를 묘사했다. 전설에서 풍혈은 한때 거대한 동굴이었다. 지금의 모양이 된 것은 대지진으로 동굴이 무너져 내린 이후라고 안내문이 설명을 하고 있다.

이창진 기자
이창진 기자 cjlee@kyongbuk.co.kr

청송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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