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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출신 황계주 비밀결사 여우회 조직 독립운동

한정규 문학평론가 등록일 2018년07월31일 16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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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규 문학평론가
1392년 조선건국 이후 심화된 당파싸움 등으로 국력이 쇠약해지자 이웃 나라 일본이 넘보기 시작 한반도 동·남해안을 중심 수시로 침범 노략질을 감행 종국에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국권을 침탈 1910년 8월 29일 조선군대를 해산 일본군에 병합시켰다. 그로부터 36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우리를 식민지통치 했다. 그러자 국내외에서 뜻 있는 젊은이들이 독립운동을 펼쳤다.

경북지역에서는 1894년 안동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문경·예천·봉화·의성·김천·영주 등 20여 곳에서 의병을 일으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정순국자로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가 61명으로 전국 각 시도 중에서 제일 많다.

경북 출신으로 적의 소굴인 일본에서 박열이 아나키스트로 활동했으며 황계주가 야마구치 상업고등학교에서 여우회를 조직 독립운동을 펼쳤다. 황계주는 1913년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나 1939년 일본 야마구치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조선어 폐지, 창씨 개명, 조선인 강제 징용 징병 등 일본제국주의 만행에 불만을 갖고 학교에서 조선인학생을 대상으로 비밀결사 여우회를 조직했다.

일제가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등의 행위로부터 하루 빨리 독립돼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여우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론 △여우회는 단순한 친목을 초월 민족주의를 우선한다. △동지의 결집을 확대 확고히 하며 조선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중일전쟁에서 일본 패망은 물론 국제적 고립을 확산시킨다. △해외 각지 독립운동세력과 연계한다. △야마구치 상업고등학교 신입생에 대한 민족의식 계몽 민족지도자가 되기 위해 힘쓸 것 등을 투쟁 방침으로 했다. 그 투쟁방향을 신입생환영 또는 졸업생 송별회 등에서 알렸다. 여우회 회원은 조국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한다는 각오를 갖도록 했다.

황계주가 독립을 위해 여우회를 만들어 항일정신고취를 위해 대대적인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일제 당국에 알려져 1939년 7월 일제가 황계주를 체포 한국으로 추방시켰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온 후 또 고향인 성주에서 독립운동을 계획하다 일본인 경찰에 알려져 일제가 체포하려 하자 그 소식을 듣고 서울로 피신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다 1944년 10월 22일 결국 일본인 경찰에 잡혀 동대문경찰서에 구금됐다.

경북지역은 일제로부터 36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던 당시 최초의 의병활동을 한 지역으로 애국을 위해서라면 어느 지역에 뒤지지 않은 자랑스러운 곳이다.

안동에 세워진 독립운동기념관만 해도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독립기념관 하면 대한민국 정부가 세운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이 유일하다. 그러던 것을 사단법인 안동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안동시 임하면에 독립기념관을 세워 2007년 8월 10일 개관했다.

그곳에는 경상북도 전 지역은 물론 경북 출신으로 일본 등 다른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투사들까지 모두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 또한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동북아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 주변국이 동북아의 패권경쟁을 벌리고 있다. 그에 핵무기개발을 빌미로 북한까지 가세 긴장을 고조시켜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 점 좌시해서는 안 된다. 이 땅에서 또다시 식민통치니 6·25와 같은 전쟁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당리당략에 앞서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국민의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는 것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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