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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그는 경주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시골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학창시절, 그는 누구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였으나 그 외에 또래들이 하는 놀이나 모임에는 별로 동참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공부 잘하는 누구, 만으로 각인되어 있을 뿐이었다. 여하튼 그는 공부에 대한 그 저력을 끝까지 발휘하여 법대를 졸업하고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패스했다. 그리고 변호사, 검사 등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한 대학의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참 거침없이 열심히만 살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젊은 시절은 그렇게 열심히 사는 것이 잘사는 거라고 단정했단다. 그래서 교수가 되고도 끊임없이 연구에 골몰했으며 1년에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이론적으로 터득한 논리에 따르면 잘 사는 것은 열심히 연구하고 열심히 논문을 쓰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의 삶을 얼마나 단조롭게 만드는지,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다채로운 삶의 입구를 얼마나 단단하게 막고 있는지, 그런 것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잘 살기 위해 연구실에서 대부분을 보냈고 술이나 담배를 동지 삼으며 책상에 앉아 스트레스의 나날을 보냈다.

그에게 온 뇌출혈의 첫 전구 증상은 두통이었다.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왼쪽 다리가 마비되는 느낌이 들면서 두통이 심해졌다고 했다. 병원에 찾아가 CT를 촬영했으나 그의 증상이 일반 환자들과는 달라 의료진도 갈피를 못 잡았던 것 같다. 두통이 오고 출혈이 심해지면 차츰 정신이 혼미해진다거나 지남력이 상실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는 그와 같은 아무런 증상도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는 다시 강의실로 돌아갔다. 그러나 결국 정신을 잃었고 뇌수술을 했다.

그는 두 번, 삶보다는 죽음에 근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첫 번은 수술 승낙서에 사인을 할 때였다. 그러나 그 순간은 갑작스레 찾아왔으므로 실감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는 30% 정도의 실감이었다고 했다. 두 번째는 수술 후 치유과정에서 오는 후유증으로 온몸에 경련이 왔을 때였다. 정신은 너무나 맑은데 복도에 쓰러진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그는 생각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찾아올 수도 있구나, 그런데 나는 한 번도 즐겁게 산 적이 없구나,

대부분은 열심히 사는 것이 즐겁게 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이 말은 도무지 어떤 의미의 말일까. 수도 없이 쓰는 이 말의 뜻을 당신은 알겠는가, 우리 모두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아침 도로에는 경쟁하듯 열심히 달려가는 차들로 붐비고 유명식당의 점심시간에는 열심히 줄 서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들은 모두 즐거울까?

그 유명한 법정 스님의 명언 중에 무소유라는 말이 있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버린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자. 즐거우려면 즐겁지 않은 것을 버리면 된다. 즐겁지 않은 것은 하지 않으면 된다. 이 일이 곧 자기답게 사는 일이라고 법정은 말했다. 그러니까 그 기준은 오직 당신만이 알 일이다. 당신의 가슴에 손을 넣어보면 알 일이다. 당신 가슴은 즐거움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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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김선동 kingofsun@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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