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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원하면서 조조를 높이는 사회

윤용섭 전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등록일 2018년08월01일 17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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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전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삼국지를 읽을 때 가장 대비되는 두 주인공은 유비와 조조다. 과거에 삼국지를 읽던 사람들은 어질고 올바른 유비가 고생할 때 안타까워했고, 교활한 조조를 쳐부술 때 통쾌해 했다. 늘 인의(仁義)를 내세우고 망해 가는 한(漢)나라를 일으키려고 애태우는 유비를 좋아했다. 특히 형주성을 맡기려는 유표에게 끝까지 사양하는 모습과 조조의 대군에게 패배하여 쫓기는 와중에도 자기를 따르는 수십만의 백성들을 데리고 가느라 부인까지 잃는 광경에 우리와는 확실히 다른 높은 도덕성을 느끼고 탄복하곤 하였었다.

조조는 어떠한가? 한나라의 승상이면서 늘 한나라 황제를 겁박하고 마침내 황후까지 끌어내 죽인다. 자기에게 복종하는 사람에게는 후하게 대하지만 항거하는 사람들은 잔혹하게 죽인다. 그리고 교활하고 속이고 거만하다.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조조. 이기주의의 극단이다. 따라서 과거의 삼국지 독자들은 거의 모두 조조를 미워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조조에 대하여 재평가한다면서, 늘 지기만 하는 유비보다 권력을 장악하여 천하를 호령하는 조조를 오히려 이상적인 인물로, 21세기 경쟁사회에서 본받을 인물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대중들은 어느 시대보다 더욱 정의(正義)를 부르짖으면서 말이다. 한편으로는 정의를 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조조형의 권력지향주의자를 성공한 인물로 꼽고 있다.

필자는 유비보다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현 세태를 개탄한다. 조조 류의 출세지상주의, 권모술수형의 인간 군상을 높이 사는 모습이 과연 오늘의 지식층이 인정하는 가치관에 부합한다면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군모술수를 비난하면서 다시 권모술수를 선망하기 때문이다. 권모술수는 유학(儒學)에서 아주 싫어하는 것이다. 나의 출세와 성공과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처세론이 권모술수요 패권주의다. 전국시대의 오기(吳起)는 출세를 위해서 착한 아내를 죽였고 현대사회의 모인(某人)은 재산을 탐하여 부모를 죽인다. 동양 역사상 권모술수의 화신이 바로 조조요 사마의다. 사마의는 조조를 능가하는 지략가요 음모가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조조를 넘어 사마의를 주인공으로 하는 삼국지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된다.

군자는 일의 성공보다는 그 과정이 정의로운가를 따진다 했다. 선비는 정의를 위하여 일신을 희생할 줄 아는 자이다. 조조를 재평가하고 사마의를 추존하는 현세는 가히 권모술수를 좋아하고 인정하는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다. 범람하는 정보와 물질의 유혹에 혼란해진 것인지, 이제는 선악의 판단도 많이 흐려졌다. 마음이 바르지 않아 음험한 짓을 하다가 어쩌다 선한 모습을 보이면 대중은 환호한다. 그리고 자신과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끝없는 투쟁을 불러온다. 결국 체면 없는 사익추구와 잔혹한 권모술수는 국가나 세계의 도덕 수준을 감퇴시키고 인류의 행복을 저해시키는 요인이 된다. 유비가 비록 어리석고 답답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일국의 황제가 되었다. 조조는 욕만 얻어먹었지, 결국 황제가 되지 못했고 자손들이 꼭 자기들이 한나라의 황족인 유씨에게 했던 그대로 사마의 일가에게 처절하게 당한다. 어질고 대의(大義)를 돌아볼 줄 알았던 유비를 좋아한 순박했던 시절이 그립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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