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는 영어로 ‘에콜로지(Ecology)’다. 에콜로지의 머리에 붙은 ‘에코’를 보통 자연생태라 이해하는데 에코는 ‘관계성’이라고 한다. 평등의 관계성이라는 것이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종종 이 관계성, 특히 평등한 관계성을 인식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들이 심각한 문제를 빚는다. 혐오나 갑질 같은 것 말이다.

‘나무예찬’을 쓴 계명대학교 사학과 강판권 교수는 ‘나무, 관세음보살’을 왼다. 요즘 유행하는 아재개그 같지만 그는 부처에 귀의하듯 나무에 귀의하길 제안한다. 강 교수는 “불가에서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 전각을 ‘관음전’, ‘원통전’이라 부르는데 ‘원’은 둥글고, ‘통’은 통한다는 뜻. 나무는 둥글고, 이 세상의 소리를 다 듣고, 또 사람들이 그 나무를 만나서 나무로부터 지혜를 배우는 것처럼 나무에 귀의한다면 훨씬 행복할 것”이라 예찬한다.

헤르만 헤세도 “나무는 신성한 것이다. 나무와 이야기 하고, 나무에 귀 기울이는 것을 아는 자는 진리를 안다. 나무는 교의(敎義)도 처방(處方)도 듣지 않는다. 나무는 개개의 일에 집착되지 않고 삶의 근본 법칙을 말해 준다.”고 했다.

이처럼 경이롭고, 심지어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나무들이 수난이다. 말 못하고, 개처럼 짖지도 못하는 나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빚어지는 무지막지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문맹이나 컴맹처럼 생태맹(生態盲)으로 인해 나무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수백억 원의 돈을 들여 심어 놓은 나무들이 말라 죽는 것은 나무를 심게 하는 공무원들이나 조경업자들이 필시 생태맹이기 때문이거나 돈만 알기 때문일 것이다. 상주영덕고속도로를 따라서 40여 종의 나무 95만 그루를 심었다. 상당수의 나무가 심은 지 2년도 안돼 말라 죽었다. 지금도 말라죽은 소나무가 즐비하다. 예천읍에서 경북도청 신도시로 이어지는 도로변에도 메타세콰이아 1600그루를 심어 놓았는데 30% 정도가 말라죽었다. 지역 곳곳에서 폭염이 내리 쬐는데 가로수를 몸통만 남겨 놓고 무자비하게 전정을 해대는 곳도 있다. 나무의 생태를 아는 공무원과 조경업자들에게 가로수 관리를 맡겨야 한다. 나무, 관세음보살.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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