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흥해체육관·임시 주거단지, 겨울용 텐트·전기요금 부담에
이중고 겪고 있는 지진 이재민

5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지진 피해 이재민 임시 거주지의 문과 창문을 활짝 연 채 37℃ 폭염을 버티고 있다. 류희진 기자
“집에 못 들어가는 것도 서러운데…날씨까지 이래 더워가 살겠능교”

더위를 피하기 위해 내 집에서 편안하게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어놓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5일 낮 최고기온이 37℃까지 오르며 유난히 더웠던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

한때 구호차량과 봉사자 부스 등으로 복잡했던 체육관 앞 주차장은 차량 10여 대와 이재민들의 식사 구역으로 마련된 천막 등만 남아 한산했다.

30여 명의 이재민은 지난해 포항 지진 이후 8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 대피소에 마련된 1평 남짓한 텐트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다.
5일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이 지난해 11월 지급된 겨울용 텐트로 가득 차 있다. 류희진 기자
체육관 내에는 15명 남짓한 이재민들이 실내에 마련된 6대 에어컨 중 가동 중인 에어컨 앞에 모여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이날 오후 2시, 흥해체육관에서 만난 이모(76·여)씨도 최악의 폭염을 이곳에서 버티는 중이다.

이 씨는 “경기도에 있는 딸네 집에 사흘 정도 신세를 지고 돌아왔는데, 좀 더 머물다 가라는 사위와 손주들의 말에 혹하다가도 가족에게 부담스럽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얼른 짐 싸서 내려왔다”며 “몸이 성치 않아 피서지는커녕 체육관 밖을 나가는 것도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체육관 양 벽면에 각각 하나씩 설치된 온도계를 확인해 보니 33℃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가 힘겨웠던 탓인지 점심 식사 시간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TV 소리 외에는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이재민 생활을 이어오던 전모(65)씨는 “대피소에 남아있는 사람 대부분은 고령에 건강도 나쁜 사람들이 많다”며 “비교적 거동이 덜 불편한 사람들은 점심이면 마을 노인정으로 걸어가 더위를 피한다”고 말했다.

이재민들은 대피소에서 여름을 나기 유독 힘든 이유로 지난해 11월 지급된 겨울용 텐트와 장판을 비롯해 통유리로 만들어진 체육관 천장 일부를 꼽으며 잠시라도 에어컨을 끄면 견디기 어렵다고 말한다.

전씨는 또 “오래 걷기 힘든 사람들은 체육관으로 돌아와 에어컨 코앞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어야 그나마 버틸만하다”고 말했다.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자동차로 5분가량 거리에 위치한 이재민들이 살고 있는 임시 주거 단지.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재민들은 실내 체육관보다 훨씬 더운 여름을 버티는 중이었다.

28채의 주거형 컨테이너 중 10여 곳 외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또, 단지 내 곳곳에서 출입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둔 집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몇몇 임시 주택에서 키우는 애완견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짖지도 않고 드러누워 방문객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53)씨는 “점심때만 되면 집 안이 바깥보다 더 덥다”며 “평일에는 출근이라도 하는데 주말에는 전기세가 무서워 집에서 땀만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에어컨도 선풍기도 아껴가며 틀었는데도 지난달 전기세가 40만원이 넘었다”며 “100만원이 넘은 집도 있던데 이번 달은 정말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한 상태”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5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지진 피해 이재민 임시 거주 시설 내 한전 사무실에 전기요금 감면 기간 연장을 진행 중이라는 공고문이 붙여져 있다.
컨테이너형 임시 주거시설은 냉난방 에너지를 전기로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이 큰 실정임을 감안해 한전의 내부지침에 따라 6개월 간 전기사용료가 감면됐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재민들이 이주할 주거환경이 마련되지 않아 임시 시설에서 살아야 할 기간은 늘어나 절반 이상의 거주 주민들은 이달부터 전기세를 내게 된다.

내 집 없는 설움을 견뎌야 하는 이재민들에게 기록적인 폭염과 전기 요금까지 떠안아야 할 이재민들은 누구보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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