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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유홍준 등록일 2018년08월06일 17시08분  
노모가 흘린 밥 한 덩어리

노모가 흘린 밥풀떼기 한 덩어리에

검은 파리떼가 꼬여 있다

이제 더 이상, 아무 할 일도 없는

앉은뱅이 노모가 초록색 파리채를 들고

탁 탁 검은 파리를 때려잡고 있다, 배때기째로 짓뭉개고 있다

여기저기 검버섯이 핀 노모의 얼굴에도 파리떼가 잔뜩

아랫배가 볼록한 저 사진 속 아프리카 소년도 마찬가지

파리에겐 그냥 한 덩어리 밥,

노모가 흘린 한 덩어리 밥과 같다

눈곱 잔뜩 낀 눈가에 파리가 달라붙어도 쫓을 줄을 모른다

제 뺨을 제가 때릴 줄조차 모른다

햇살 따가운 슬레이트지붕이 무너진다

낡고도 가벼운 그림자가 마당 가득 무너진다

다 늙은 노모가 걸레 한 쪽을 까뒤집어

눈가를 닦는다 걸레로 입가를 닦는다





(감상) 무더위는 파리떼를 쫓는 노모의 기운마저 사라지게 합니다. 결국 슬레이트 지붕도 그림자도 무너지게 만들고, 한 덩어리 밥도 빠르게 썩게 합니다. 기운 없어지는 노모나, 굶주린 아프리카 소년이나 여름은 한층 더 죽음을 향해 가까이 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제3자에겐 그냥 한 덩어리의 밥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은 인생이니, 올 무더위에 모두 무탈하길 빕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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