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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독립운동가 '이만도'선생

한정규 문학평론가 등록일 2018년08월08일 15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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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규 문학평론가
1600년대를 전후 일제가 우리나라 남해와 동해를 중심 노략질을 시작 1592년 임진왜란을 거처 1890년대 청나라와 러시아로부터 침략을 막아 보호해 주겠다는 그럴싸한 술수로 우리나라에 상륙 1895년 10월 8일 새벽에 경복궁을 침입 명성황후 민비를 살해하고 고종을 겁박 종국에는 을사늑약을 통해 1910년 8월 29일 조선군대를 해산 일제에 병합 조선총독부를 설치 식민통치를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뜻있는 애국지사들이 국내외에서 의병항쟁, 3·1독립운동, 유림단 의거, 계몽운동, 청년운동, 농민운동, 6·10만세운동, 학생운동, 자결순국, 미국 또는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무장 항일투쟁 등 갖가지 수단으로 일제에 항거했다.

당시 안동지역에선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상용을 필두로 만주지역에서 항일투쟁을 한 김동삼, 의혈투쟁을 한 김지섭, 저항시인 이육사, 자결순국자 이만도 선생 등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전국 시군구 중에서 안동이 제일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정부가 확인 한 자만도 300여명이 넘는다. 미 확인자를 포함하면 1천여 명이나 된다. 그중 서훈자만도 60명이 넘는다. 그 또한 전국 시군 중 당연 1위다.

그중 8월의 독립운동가 이만도 선생은 이황 퇴계 선생의 11세손으로 스물네 살에 정시 문과에 장원 사간원 사간을 지낸 선비로 경술국치에 항거 단식 순국을 했다.

고종 32년인 1895년 을미년 4월 친일파가 그들의 교두보로 훈련대를 창설 대장에 이두황 이주희 우범선을 지명했다. 민비 측에서 훈련대 설치를 반대 그해 10월 7일 해산시킬 것을 고종이 하교했다. 그러자 일본인 미우라가 우범선에게 군대 동원 명령을 내려 우범선이 주동 1895년 10월 8일 새벽 4시 30분 일본인 자객들이 경복궁을 침입 대원군을 끌어내고 일본인 데라자기가 명성황후를 칼로 찔러 시신을 불태웠다.

그 사건을 계기로 경상북도에서만도 문경 예천 김천 영주 봉화 의성 안동 등 20여 곳에서 의진이 일어났다. 그때 안동에서는 이만도선생이 예안 선성의진을 결성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1905년 을사늑약을 파기할 것과 1905년 일제가 러일전쟁에서 승리 포츠머스조약을 체결 조선을 보호국화하기 위한 조치로 이토 히로부미가 고종을 강요 을사조약을 추진하자 참정대신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민영기 만이 반대를 하고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공상부대신 권중현이 적극 찬성했다. 적극 찬성을 한 다섯 명을 오적이라 하여 처형을 요구한 상소를 하고 단식 순국했다.

이만도 선생의 애국정신을 받들어 일본을 위시한 주변국들로부터의 안보위협에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정치인들의 허황된 꿈, 막아 버린 귀 뚫고, 감긴 눈 똑바로 뜨고, 닫힌 가슴을 활짝 열어 그리고 지나친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협치와 협력으로 새로운 역사를 썼으면 한다.

일부 정치인들 보통의 국민만 못한 사고로 언행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보고 다수 국민들이 비웃는다는 것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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