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도구도 잘못 적용하면 부작용이 따른다. ‘공론조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공론조사가 연거푸 부작용만 낳고 있다. 지난해 신고리 원전 공사 문제도 그렇고, 대입제도개편 공론조사도 그렇다.

공론(公論)은 그야말로 공공적인 의견이다. 좀 어려운 철학적 견해를 빌리면 ‘다수자가 갖고 있는 견해와 사상의 경험적 보편성’이다. 친 정부 학자들은 “공론조사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한국식 시민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장광설이지만 그 부작용이 크다.

서양 철학자 헤겔이 이미 공론의 양면성을 잘 지적했다. 헤겔은 공론이 한편으로는 국민통합의 기반, 정치적 지배의 정통성을 담보하는 원천이라 했다. 또한 공론은 어떤 문제가 드러나게 환기시키는 근대 세계의 원리라고 평가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론이 현실사회의 참된 욕구와 방향성을 나타내는 것이라지만 그것 또한 다수자의 주관적인 의사의 집합으로 우연성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객관적 인식은 이러한 우연성을 넘어 확고한 결과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두 차례의 중요한 국정 관련 공론조사가 후자의 결과를 내고 있다.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 공론조사위원회가 정시 확대와 수능 절대평가 전환 사이에 확실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어정쩡한 판단을 내리고 마무리됐다. 공론화위 시민참여단은 ‘정시를 확대하고 수능 절대평가는 차후 검토과제로 남겨두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내세웠던 정부 안과 배치된다. 이렇게 되면 문제를 푼 것이 아니라 문제를 그대로 출제자에게 돌린 셈이다.

정부는 공론조사를 ‘숙의 민주주의’라 포장했지만 사회적 갈등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긴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공론조사가 국가의 중대 정책 결정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시민사회에 전가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 정책 결정이 잘못돼도 정부의 책임이 아닌 공론이었다고 우기면 된다. 공론조사에 비용만 낭비하고 합리적 결론을 얻지 못했다. 공론(公論)이 공론(空論)이 됐으니 말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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