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치가 좌판에 펼쳐져 있다. 한 발은 바닥을 딛고 또 한 발은 계단을 오르는 자세다. 태어나면서부터 굳어가는 두 팔을 겨우 흐느적거리고 있지만, 마르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어깨에 걸쳐 맨 공구박스 속에서 붉은 칸나가 녹았다. 두 귓속을 파고드는 소리의 찌꺼기들, 넙치는 열쇠를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주머니에 넣었다. 계단이 접힌 곳에 슬그머니 죽은 앵무새를 놓았다. 골목에는 버려진 신발이 가득했다. 벗겨진 가면처럼 웃으며 밤의 가장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다.





(감상) 한 사내가 넙치처럼 계단을 파닥거리며 오르고 있네요. 사내가 다니는 길이 곧 좌판이고, 몸이 성치 않은 데다 수리하는 일마저 쉽지 않으니 들리는 소리도 찌꺼기로 파고드네요. 공구박스 속엔 칸나 꽃이 녹아들고 앵무새도 죽어나갈 정도로 희망이 보이질 않아요. 그 동안 자신의 몸을 지탱해준 신발들이 골목에 그득하네요.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어둠으로 속으로 스며드는 사내의 모습이 스산하네요. 우리의 두 눈은 양쪽에 있는데 따뜻한 눈으로 보지 못하니, 우리가 좌측으로 눈이 몰린 넙치 아닌가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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