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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석 새경북포럼 구미지역 위원·공공정책연구소 소장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며, 사회와 더불어 공존하는 존재임을 주장하였다. 공존의 표현을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이라고 할 때,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고 사회가 진보함에 따라 나타나는 현실적 인간의 기본적 가치관인 사회성의 폐해는 철학자가 우려할 정도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인연이라고 한다. 인연은 개인이나 조직의 만남이며 만남을 통한 사회적 결합 그것이 곧 사회성인 것이다.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며 타인과의 만남을 기피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오타쿠’는 인간의 기본적 관계인 만남이 허물어져 생기는 현상이다. 타인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자신에게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폐쇄적 ‘오타쿠’는, 보통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개인의 성격장애를 만들어 개인주의에 의한 사회 전체의 피해를 만든다. 우리는 만남을 게을리 한다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언제든 사회적 관계에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는 공존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년 전 유럽연합 탈퇴의 찬반을 묻는 영국 국민투표의 결과가 아직도 영국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공하고 있다. 이른바 ‘브렉시트’이다. 영국은 17세기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인류 문명에 많은 영향을 끼친 패권 국가이며, 한때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주도적 지위를 확보해 왔다. 인도를 비롯하여 전 세계 100여 곳을 지배하였던 식민지 국가의 원조이기도 한 영국의 찬란한 영광도 강대국들의 주도권 다툼에서 영원히 지속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주변 국가들과의 경쟁력에서 대영제국의 ‘브렉시트’는 자국우선주의로 자존심보다 실리를 선택한 결과인 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유럽연합’은 프랑스와 독일의 주도로 경제적으로 협력하고, 유럽의 발전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8개국의 참여로 이루어진 연합의 배경은, 그리스 로마시대를 거쳐 1000년 이상의 많은 시간 동안 국가와 지역의 나눔으로 세계 질서가 편성된 결과이다. 이들 국가의 독특한 이해관계의 대립은 언제든지 충돌할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으며, 그중 영국이 첫 번째 탈출구인 ‘브렉시트’를 만든 것이다. 피난민과 이민자들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급증하고 있는 무슬림들의 테러에 대한 자국민의 안전과 공포감을 수용하기 힘든 부분도 있겠지만, 한마디로 영국 우선주의의 발로라는 생각이다. 더욱이 영국의 탈퇴를 시작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체코 등 자국 내에서도 EU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EU 붕괴를 가져올 불씨이다.

개인의 자존심과 이웃의 자존심이 모여 나라의 자존심이 만들어지듯이, 개인의 존재가치가 모여 국가의 울타리가 만들어진다. 앞으로 브렉시트가 가져올 영국의 정치, 경제적 파장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유럽연합(EU) 탈퇴로 인한 불확실성에 향후 경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추진해야 한다는 영국 국립경제사회연구원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 이익을 쫓아 공존을 탈출하는 영국으로서의 선택이, 과거의 헤게모니와 자존을 찾기 위한 방법일 수는 있지만, 사회와 단절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집착하는 은둔형 외톨이와 다를 게 없다. 왕따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처럼, 자기만의 이익을 좇다가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의 협동이 우월하듯이 상부상조가 바람직한 삶에서 유리하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협력하여 어려운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 가는 지혜만이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본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하는 존재이며, 그것의 증명이 사회적 만남이다. 결국 공존의 사회는 ‘사회적 울타리 없는 나는 절대 존재하지 못한다.’ 는 말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사회적 동물에 근접한 해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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