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출옥 앞두고 아들에게 보내"
부인 김락·아들 형제도 항일독립운동에 헌신

이중업의 옥중서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중업(1863~1921)의 옥중서신이 최초로 발견됐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최근 1990년 당시 애족장에 서훈되었던 이중업의 옥중서신을 발견했다고 13일 밝혔다. 이 편지는 가로 18cm, 세로 22cm의 한지에 초서로 쓰여졌다.이중업은 애족장에 서훈되었으나 아직까지 수형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옥중생활의 면모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 편지는 진성이씨 향산고택에서 2002년과 2005년에 걸쳐 기탁된 4660점의 자료 가운데 2천 300여 점의 간찰류 가운데서 발견됐다.

편지에는 일제강점기 형무소에서 외부로 전송되는 편지를 사전 검열한 표식인 ‘검(檢)’자의 붉은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편지는 아들 동흠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며, 1920년 음력 9월 5일 출옥을 앞두고 8월 11일 보냈다.

내용은 옥중에서 악성 종기에 시달리면서 학질까지 겹쳐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사정을 전하면서 출옥 이후의 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옥중에 사식을 넣어준 하영숙이란 인물에게 고마움을 전하도록 하고, 주변의 친척들은 방문하되 외부인은 일체 만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중업은 1910년 일본이 강제병합을 단행한 직후 9월 17일 단식에 돌입하여 24일 만에 순국한 향산 이만도의 아들이다. 이황의 12대손인 이중업은 김흥락의 제자가 되어 퇴계 학맥을 계승했다. 그는 아버지가 을미의병을 일으키자 당교격문(唐橋檄文)을 지어 안동·예안·상주·봉화 등지의 장터에 내다 붙이며, 경북 북부 지방 독립운동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이중업은 김대락(金大洛)의 여동생인 김락(金洛)과 결혼했으며, 김락은 예안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견디다가 두 눈을 실명했다.

이중업은 퇴계종가에서 갈라져 나온 도산 하계마을 출신이다. 25명의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하계는 우리나라에서 마을 단위로는 가장 많은 독립 운동가가 나온 곳이다. 이중업의 아버지 이만도는 일본의 강제병합 직후에 자정순국하여 독립장에 추서되었고, 삼촌 이만규는 이중업과 함께 파리장서에 참가하여 건국포장을 받았다. 그의 처 김락은 3·1운동에 참가하고 두 아들의 옥바라지를 하여 애족장에 추서됐다. 아들 이동흠과 종흠 형제도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국가유공자가 됐다.

오종명 기자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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