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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평화의 의미 널리 전파"

생존 애국지사 2인이 말하는 마지막 희망
의성출신 애국지사 배선두

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등록일 2018년08월14일 20시51분  
올해로 95세로 광복 73주년을 맞은 배선두 애국지사
“‘내가 가는 길이 대의를 위한 길인지 확인해라. 내가 가는 길이 역사가 된다’, 김구 선생 모시면서 배웠던 가르침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에서 김구 선생을 호위했던 배선두(95·경북 의성 출신) 애국지사는 초고령의 나이에도 70여 년 전 김구 선생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배 지사가 광복군으로 향했던 과정이 험난했던 만큼, 김구 선생의 가르침에 느낀 바가 많았던 것이다.

1943년 10월, 당시 나이 20살로 막 성인이 된 배 지사는 일제에 강제로 징집돼 의성에서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훈련을 받았다. 출퇴근 훈련을 받으면서 도망치는 다른 사람들을 수없이 봤다. 그러나 일본군과 대치한 중국군 사이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양쪽에서 쏘아대는 총알에 무력하게 쓰려졌다. 행군과 함께 20일 동안 훈련이 또다시 진행됐다. 훈련 중 잠시 쉬고 있던 배 지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뛰었다.

배 지사는 뜻이 맞는 주변 동료와 이야기를 나눴고 총 18명이 광복군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일본군이 떠나려는 기색을 알아차린 듯했지만, 배 지사는 안 가도 죽을 판에 떠나기로 마음을 확고히 다졌다.

20리 떨어진 일본군 보급 부대에 쌀과 소금을 얻으러 다녀온 후 도주를 결심했다. 쌀까지 들고 달아나면 광복군으로 향하는 여정이 손쉬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계획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보급품을 가지고 부대로 돌아왔을 땐 이미 16명이 떠난 상태였다. 일본군은 도주한 자들을 추적했고 중국군과 경계에서 모두 목숨을 잃었다.
지난 2014년 3월 1일 배선두 애국지사와 당시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행사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당시 일본군 사이에서 주동자로 꼽힌 배 지사는 꼼짝없이 죽었다는 생각에 숨죽여 눈물을 훔치기도 했지만, 품속에 칼을 움켜쥐었다.

배 지사는 “징집된 동료들이 아까운 목숨 잃는다면서 나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그래서 죽는 건 똑같은 데 함부로 우리를 죽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생각으로 품에 칼을 쥐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일본군 중대장이 집을 언급하며 훈계 선에서 마무리됐다.

배 지사는 가족까지 언급한 마당에 더는 망설일 수 없어 탈출을 감행했고 광복군과 합동 작전을 펼쳤던 중국군 유격대에 가담할 수 있었다. 배 지사는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갈 수 있었는지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광복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인 조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탈출한 12명 모두 중국군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광복군으로 바로 합류하진 못했다. 중국군에 도착하기 이틀 전 합동 작전을 펼치던 광복군이 침투 훈련을 위해 떠난 것이다.

결국 배 지사는 5개월 동안 중국군에서 작전을 펼쳐야 했다.

배 지사는 “산등성이에 올라가서 일본군이 있으면 거기서 총을 쏘고 밤에는 수류탄을 던져야 했다. 수류탄도 둥근 수류탄이 아니라 다이너마이트 같은 모양인데, 굴러가지도 않아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전했다.
지난 2015년 8월 15일 배선두 애국지사가 경북 의성에서 열린 광복절 행사에 참석한 이후 참석 내빈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배 지사는 1945년 4월 동료들과 함께 중국 중경으로 이동해 토교대에 입대했다. 이어 보름 뒤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에 배속됐다.

배 지사는 1945년 4월부터 8월 15일 해방까지 김구 선생 옆에서 호위를 맡는 동안 대대장으로 불렸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누구도 ‘선두야’라고 배 지사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배 지사는 당시 모든 어른이 가르침을 줬다고 강조했다. 나이가 어리다거나 배우지 못한 이유로 무시하거나 눈치를 주는 일이 없었다. 배 지사는 “당시 총사령부에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을 두고 벌이는 신경전을 보고 김구 선생이 나라 찾아놓고 따져라고 혼내던 것이 기억난다”면서 “한 달에 한두 차례 훈시 비슷한 교육을 받았는데 김구 선생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배 지사는 해방 이후 1946년 6월 이범석 장군 등과 인천항으로 귀국해 방위군 파견대장으로 2년간 지역사회 혼란을 진정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또한 대동청년회장 등 지역 사회 내 각종 단체장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정부에서는 배 지사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배 지사는 “지금 생각해보면 김구 선생 밑에 있지 않았으면 일찍이 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면서 “힘이 있을 동안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모든 행사에 참여하고 전쟁이 아닌 평화가 가져다주는 의미를 널리 알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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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용 기자

    • 전재용 기자
  •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