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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초대장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등록일 2018년08월15일 18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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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어제는 아주 특별한 장례식에 다녀왔다. “죽지 않고 살아있을 때 하고 싶습니다. 제 장례식에 오세요” “여러분의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을 때 인생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화해와 용서의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 입고 오세요. 같이 춤추고 노래 불러요. 능동적인 마침표를 찍고 싶습니다” 장례식 초대장 내용이다.

장례식 하면 어둡고 무겁고 슬프고 장엄한 분위기가 연상된다. 하지만 이번에 갔다 온 장례식은 함께 축하하는 자리, 함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어두운 분위기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다. 참석한 사람 모두 손잡고 함께 노래하고 춤도 추었다.

주인공은 김병국 선생이다. 올해 85세신데 전립선암이 발견된 지 1년이 지났고 지금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상태다. 선생은 건강이 더 악화되기 전에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진솔한 생각을 나누고 싶어 했다. 초대장에 나와 있는 대로 고마운 마음도 전하고 뭔가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화해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 했다. 장례식 중에 실제 다툰 적이 있는 분과 화해의 말씀을 나누면서 마음을 푸는 모습도 보여주셨다.

선생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노년세대 노동조합인 노년유니온에서 부위원장을 맡아 활발히 활동했다. 인터넷에 ‘도끼상소’를 치면 선생 얼굴이 나온다. 지금 생계급여 수급권자에게는 기초연금을 통장에 넣어 주고 다음 달 생계급여액에서 같은 액수를 삭감시키고 있다. 가장 가난한 노인 40만 명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한 뒤 되가져가고 있다. 사람들은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라고 한다. 선생은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청와대 앞 도끼상소를 여러 번 했다.

노년유니온이 장례식을 준비하는 데 앞장섰다. 현재 입원해 있는 서울 동부시립병원도 힘을 보탰다. 병원 내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함께 했다. 음식을 준비한 사람들도 있었다. 청년주거공동체에서 온 청년들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어울림 춤마당을 이끌어준 분들은 멀리 산청에서 왔다. 참석한 모든 사람이 기쁨의 시간을 가졌다.

죽음은 두려운 그 무엇이고 어두운 그 무엇이고 피하고 싶은 그 무엇이다. 장례식은 사후에 유족이나 지인이 알리고 친지나 지인들이 모여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아파하는 자리다. 김병국 선생의 장례식은 완전히 달랐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흐르는 은은한 즐거움이 함께 한 자리였다. 노랫소리 잔잔히 퍼졌다. 선생은 청년들이 부른 노래에 대한 답가로 모나리자, 이사가던날을 불렀고 참석자들은 다 함께 소리 내어 따라 불렀다.

노년유니온 고현종 사무처장은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고 죽음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존중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 어느 소수민족을 보니까 사람이 죽었을 때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축하해 주고 즐거워했다. 고통의 시간이 이제 끝나고 극락의 세계로 가게 되었다고 즐거워한단다. 죽음에 대한 자세에는 문화가 녹아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열린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선생의 장례식 제목이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이다. 색다른 걸 넘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머지않아 생을 마치게 될 걸 모두가 알면서도 슬퍼하지 않고 함께 교감할 수 있어 좋았다. ‘주인공’이 살아 있을 때 말을 할 수 있을 때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장례식을 여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죽음에 대해 터부시하거나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직접 대면하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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