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분 제대로 축적하지 못해 덜 익고 떨어지거나 말라비틀어져
사과는 상품가치 잃는 밀병도 발생···농민들 시름도 갈수록 늘어

예천군 지보면 소화리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정영대 (64) 씨의 복숭아 농장은 폭염으로 낙하와 복숭아가 물어져 지난해 대비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런 폭염은 복숭아 농사를 지은 지 19년 만에 처음이다. 나무도 숨을 쉬고 영양분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어 갈라지고 물어지고 있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에서 3만9000㎡(1천300그루) 복숭아 농사를 짓는 김영복(60)씨는 요즘 밭에 들어설 때마다 한숨이 앞선다.

황도 수확이 시작됐지만, 개화기였던 지난 4월 냉해에 이어 최악의 폭염이 겹치면서 갈라지고 물어지는 현상과 덜 익은 열매가 우수수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나뭇가지에 매달린 복숭아도 가뭄과 찜통더위 속에 제대로 자라지 못해 값나가는 대과(大果)는 찾기가 어렵다.

19년 동안 복숭아 농사만 고집해온 김 씨는 복숭아에 대해서는 박사다. 그러나 올해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날씨로 베테랑인 그조차 이상기온에 손을 들었다.

지난 1월 영하 15도를 밑도는 초강력 한파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50여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동해(凍害)를 입은 상태에서 개화기인 4월 7∼8일에는 영하의 기습한파가 몰아닥쳐 꽃이 얼어붙는 등 수정 장애가 발생했다.

이후 짧은 장마를 거친 뒤 비 한 방울 없는 메마른 환경 속에 35도를 넘나드는 가마솥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가마솥 폭염 속에 나무들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면서 과실이 제대로 맺지 못하고 있다.

매년 7월부터 1만7000상자(4.5kg, 2.5kg)를 출하하는 김씨는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1만3000상자만 내다봤다.

지보면 소화리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정영대 (64)씨도 지난해 대비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1만㎡ (3000평)에 매년 1천 500상자를 출하하던 정 씨는 올해 700상자만 출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천에서는 지난달 11일 내려진 폭염 주의보가 이튿날 경보로 강화된 뒤 35일째 폭염 특보가 발령돼 있다.
영천시 신월리 1만㎡의 포도 농사를 짓는 이장 양대융 (58) 씨의 포도농장에도 알이 굵어지기 전 성장이 멎거나 알이 말라버려 상품이 되지 않고 있다.
영천시 금호읍 신월리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농가 60~70가구도 폭염에 포도알이 화상을 입어 말라가고 있어 애를 태우고 있다.

1만㎡의 포도 농사를 짓는 이장 양대융 (58)씨의 포도농장에도 알이 굵어지기 전 성장이 멎거나 알이 말라버려 상품이 되지 않고 있다.

양씨는“햇볕이 너무 강해 포도 잎이 돌돌 말리면서 누렇게 타들어 가고 심지어 포도 알까지 화상을 입어 말라비틀어지고 있다”며 “10년 넘게 포도농사를 지었지만, 올해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탄식했다. 그는 이어 “매년 4t 정도를 생산했는데 올해는 절반 정도만 생산할 것 같다”라며 “알 굵은 포도는 9송이 정도면 5㎏ 상자를 채우는 데, 올해는 12∼13송이를 담아야 겨우 찬다”며 “가뭄과 폭염으로 제대로 된 송이 찾기가 드물다”고 덧붙였다.

사과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예천군 은풍 면에서 은풍준시와 사과 농사 3만3000㎡(1만평)를 짓는 김봉규 (48) 씨는 “하늘도 무심하지 봄에는 냉해로 피해를 보고 여름에는 불볕더위에 과수가 타들어 가고 이제 농사짓는 것이 힘이 든다”라며“ 봄 냉해 피해로 60% 정도, 여기다 일소현상 (햇볕 데임)으로 15% 농작물을 망쳐 올해 농사는 끝났다”며 찜통 같은 가마솥더위에 작물이 익어가는 것을 보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농약이라도 쳐보지만 내리쬐는 뙤약볕에는 소용이 없다.

또 겉은 멀쩡하지만, 사과 속에 반점이 생겨 상품가치를 잃는 밀병도 발생하고 있다. 밀병은 과실 내 당의 일종인 소르비톨(sorbitol)의 축적량이 많아져 이것이 세포 밖으로 스며 나와 세포 사이를 채우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님 진상품으로 통하는 예천군 은풍면의 감(은풍준시)도 직격탄을 맞아 익어가고 잎은 타들어 가고 있다.

손석원 예천군 농업기술센터 기술개발 담당은 “식물의 경우 낮에 광합성으로 모은 에너지를 밤이 되면 영양분(포도당)으로 바꾸는 데, 폭염과 열대야가 반복되면서 이런 과정이 사라진 대신 호흡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나무가 영양분을 제대로 축적하지 못하다 보니 열매가 떨어지거나 매달려 있더라도 성장이 멎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이상만 기자
이상만 기자 smlee@kyongbuk.com

경북도청, 경북경찰청, 안동, 예천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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