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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대신 손주라도 만나게 돼 꿈만 같아"

북측 두 손자 만남을 앞둔 이산가족 권 석 씨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등록일 2018년08월15일 20시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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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앞둔 권석 여사가 북한의 손자들에게 보여줄 할아버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죽기 전에 그립던 아들은 못 만나도 혈육인 손주를 만나게 돼 꿈만 같아요”

제21차 이산가족 상봉자 명단에 경북에서 이름을 올린 권석(94) 씨는 17살에 시집온 후 지금까지 줄곧 아들 소식을 기다리며 봉화군 법전면 풍전리에 살고 있다. 권 씨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70년 전에 헤어진 아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 이병주(92) 씨는 6·25전쟁이 발발한 뒤 소식이 뚝 끊겼다. 당시 첫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과 처를 남기고 자취를 감췄다. 8년 뒤 일본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오면서 가족들은 이 씨가 북으로 간 것을 알았다. 가족들은 일본 주소로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 소식은 없었다.

권 씨는 당시 “너무 슬퍼서 편지 한 줄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편지에는 병주 씨가 북에서 결혼해 아들을 낳았고 다음 편지에 아들 100일 사진을 동봉해 붙이겠다고 적혀 있었다. 권 씨는 “아들의 육필인 편지가 지금 전해지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후 권 씨는 두 번이나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 상봉은 북측에서 이병주 씨의 아들이 상봉 신청을 하면서 만나게 됐다.

권 씨는 “아들 병주는 북에서 결혼해 아들 2명을 낳아 대학교수로 퇴임해 살다가 죽었다고 알고 있어요. 아들 병주가 자식들에게 남쪽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보라고 유언을 남긴 것 같아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권석 씨는 아들 병주가 효자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병주는 저한테 친엄마 못지않게 참 잘했어요. 저가 17살에 시집오니 병주는 15살이었지요. 한 때 윤감(감기)에 걸려 앓아누워 있는데 시부모와 남편도 찾아보지 않았는데 병주는 아침저녁으로 들러 병간호를 했어요. 효자였어요”

권석 씨는 봉화 물야면에서 법전면으로 17살에 시집왔다. 당시 일제가 위안부로 여자들을 공출한다는 소문이 돌자 권 씨 집안에서는 서둘러 시집을 보내야만 했다. 형편이 어렵다 보니 3남매가 딸린 재혼 처였지만 집안의 결정에 따라야만 했다. 이후 권 씨는 14년 뒤 남편과 사별하고 넉넉하지 않는 살림에 시부모를 모시며 5남매를 키웠다. 여기에 병주 씨의 아들까지 돌봐야 했다.

한때 권 씨는 자식들 교육을 위해 대구로 떠나 있었다. 권 씨는 “그때가 참 어려웠어요. 시골같이 품앗이할 곳도 마땅찮고, 유독 병주의 아들한테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라고 회상했다.

권 씨는 금강산에서 만날 손자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70년 가까이 가슴 속에 묻고 살았던 아들의 혈육들을 만날 수 있어서다. 자신은 생전에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지만 자신의 혈육들을 보낸 아들 병주 씨의 마음을 읽은 권석 씨는 벅찬 눈물을 흘렸다.박문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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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명 기자

    • 오종명 기자
  • 안동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