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5일 서울 명동의 한 백화점 의류매장 앞에 1000명이 넘는 노숙 행렬이 이어졌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망’과 H&M합작 제품의 한정판 출시 때문이었다. 일부 젊은이들은 엿새 동안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출시하는 상품을 사기 위해 거리에 텐트를 치고 일주일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다. 2012년 5월 14일 서울 왕십리역 광장에서도 기이한 풍경이 연출됐다. 선착순으로 한정 판매될 인터넷 게임 ‘디아블로 3’를 사기 위해 5000명이 몰린 것이다. 미국 블리자드사가 개발한 이 게임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이들은 이틀 밤낮을 노숙했다.

한정판(Limited edition)은 책의 출판 부수를 한정해서 찍어내는 것을 말한다. 특정인을 대상으로 배포되는 비매품 서적이나 예약 구매자를 정해 발행하는 출판물을 ‘한정판’이라 이름 붙였다. 기업들이 이 희소성과 특별함을 상품 판매에 도입한 것이 ‘한정판매 마케팅’이다.

지난 13일 아침 미국 뉴욕의 신문 가판대가 불이 났다는 소식이다. 일간지 ‘뉴욕포스트’가 신문 1면 제호 아래에 기사가 아니라 ‘수프림(Supreme)’이란 패션 브랜드의 로고만 인쇄해 발행했기 때문이다. 1달러인 이 신문은 하루 23만 부를 발행하는데 뉴욕 번화가에선 오전 7시 30분에 다 팔렸고, 9시 30분에 뉴욕 전역에서 신문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날 발행한 신문은 중고거래 사이트 이베이에서 당일 12~20달러에 거래됐다.

수프림은 1994년 뉴욕에서 스케이트 보더를 위한 보드와 옷, 액세서리를 파는 매장으로 시작한 브랜드인데 ‘쓰레기도 수프림 로고만 붙으면 팔린다’고 할 정도로 품절 신화로 유명하다. 수프림이 지난 2016년 벽돌에 로고를 찍어 30달러에 내놓았더니 품절 됐다. 온라인에선 벽돌 한 장에 1000~2000달러에 거래됐다.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이 로고는 현대미술가 바버라 크루거의 작품 ‘나는 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수프림’은 첨단 상술 ‘한정판’의 대명사가 됐다.

국내 기업도 한정판을 중요 마케팅 전략으로 하고 있다. 한정판의 미덕은 ‘품질과 신용’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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