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뒤를 이어 11살인 순조가 왕위에 올랐다. 나이 어린 순조는 영조의 두 번째 왕비였던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아야 했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자 정조를 도와 국정개혁에 참여했던 신하들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자행됐다.

정약용 등 주로 남인 학자들이 귀양 가거나 죽음을 당했다. 순조가 15살이 되자 수렴청정에서 물러난 정순왕후는 1년 만에 죽었다. 정순왕후가 죽자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 세력인 안동김씨 집안이 정권을 장악했다. 순원왕후는 시파인 김조순의 딸이었다. 김조순은 자신의 집안을 전부 끌어들여 조정의 관직을 독점, 온 나라를 한 집안이 마음대로 주물렀다. 이른바 세도정치의 개막이었다.

순조는 안동김씨 세도를 막아내기 위해 세자의 비를 풍양조씨 집안에서 들였다. 그러나 풍양조씨도 새로운 세도세력으로 등장, 세도정치가 양분됐다. 효명세자가 22세 나이로 요절하자 안동김씨가 다시 나라의 대권을 독차지, 안동김씨 세상이 돼버렸다.

중요한 관직을 독차지한 안동김씨 세력들은 매관매직을 통해 치부에 혈안이 됐다. 무거운 세금과 탐관오리들의 전횡으로 삼정(전정·군정·환곡)이 문란해져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졌다. 나라가 부패왕국으로 전락, 홍경래 난 등 곳곳에서 민란이 터졌다.

안동김씨 세력들은 왕족 중에서 나중에 왕위에 올라 자신들의 권력에 위협이 될만한 인물들은 서슴없이 처단, 닥쳐올 화를 예방했다. 대원군의 형 이하원의 죽음도 안동김씨의 덫에 걸린 비극이었다. 안동김씨 세도정치에 시달린 순조가 세상을 떠나자 효명세자의 아들인 왕세손이 왕위를 계승했다. 그가 바로 24대 현종이다. 불과 8살 밖에 안 되는 현종은 할머니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순원왕후의 수렴청정과 함께 안동김씨의 세도는 욱일승천,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악화 됐다.

지금 대한민국은 입법, 행정, 사법, 지방 등 모든 권력이 집권세력 한 곳으로 쏠려 있다. 안동김씨 세도를 연상할 만큼 ‘문재인 코드세도’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당이 있으나 마나 한 정치판에서 ‘코드세도’ 서슬이 시퍼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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