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만 부처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으로부터 나는 부처의 성품을 만난다. 생명을 영위하는 모든 것들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들 모두가 삶의 스승인 셈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들은 말없이 온몸으로 우주의 진리를 투영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각각 다른 부처의 세계를 열어 주는 스승들이다. 부처를, 스승을 절이나 학교에서 찾으려고 하면 갇혀버리고 만다.” 학승 소운 스님이 2004년에 낸 ‘하버드에서 만난 부처’에서 한 말이다.

비구니 소운 스님은 동국대학교를 나와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에서 8년간 인도불교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처를 만나기 위해 구도(求道)행을 떠난 소운 스님은 불교철학에서 길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불교 근본 교리를 떠나 생활 주변에서 부처를 만났다고 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한 지 3년째 되던 어느 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팔면서 환하게 웃는 카페의 흑인 아저씨, 도서관 경비원, 기숙사 청소부 아줌마 등 필부필부들이 부처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 속에 있는 진리를 찾느라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인연들의 소중함을 깨닫자 부처는 그들의 얼굴을 하고 스님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소운 스님은 “20년 가까이 공부한다는 핑계로 하루 24시간을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써왔지만, 이제는 나의 시간을 ‘주위 부처’들을 위해 쓰면서 살 작정”이라 했다.

지금은 종교가 세상을 바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고 있다. 종교가 적폐라는 말까지 나온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할 기독교의 금권선거와 세습은 물론 조계종단의 권력다툼 이전투구는 돌부처도 고개를 돌릴 판이다.

은처자(隱妻子·숨겨 놓은 처와 자식) 논란이 인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에 대해 조계종 국회 격인 중앙종회에서 16일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이후 12월까지 있겠다던 설정 스님이 21일 “산중으로 돌아가겠다”며 수덕사로 떠났다. 소운 스님의 말처럼 부처는 산중에만 있지 않다. 부처도 하나님도 세상 속에 있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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