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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환 문경지역위원회 위원·문경사투리보존회장
태어나 보지도 못한 고모님이 계셨다. 11살에 솥골로 이사를 와서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 고모님이 오셔서 알게 된 것이다.

이 마을 도랑 건너 사신다는 고모. 약간 부족하신 이 분은 행색도 지저분했다. 어릴 때부터 알고 왕래했던 두 분의 고모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말씀하시는 것도 조리가 없어 편찮으신 아버지는 그저 고모가 말씀하시면 허허 웃기만 하셨다. 차츰 알아갔지만 고종사촌 4형제 중 반은 이 고모를 닮고, 반은 고모부를 닮았다.

고모부는 비록 소작 농사를 지으셨으나 키도 훤칠하시고, 말씀도 점잖으신 게 쓱 씻고 두루마기를 걸치시면 웬만한 양반 행색은 조이 되었다. 그런 고모부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어머니가 할 수 없는 밭갈이, 논 쓰리, 타작 같은 우리 집 큰일을 많이 도와주셨다. 그러니 고모부와 고모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 고모가 ‘움고모’였다. 본래 우리 고모가 문경 팔영에서 솥골 동래정씨 고모부한테 시집을 오셨는데, 시집온 지 얼마 안 돼 후사도 없이 돌아가셨던 것이다. 그러자 고모부는 새장가를 들었고, 이 고모는 고모부가 새로 만난 분이었다.

우리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었다. 고모라면 우리와 한 핏줄로 이모와는 또 다른 정이 느껴지는 분인데, ‘움고모’는 이도 저도 아닌 그냥 남남이었다. 고모부가 몇 년 우리 집안과 문객으로 드나들었을 뿐, 지금 시절의 눈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관계였다. 고종사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 관계는 더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움고모’는 두부를 하거나 묵을 하거나 새로운 음식, 귀한 것이 있으면 꼭 ‘오빠’에게 가져왔다. 그 덕에 우리도 새로운 음식을 맛보았는데, 나는 어쩐지 지저분하다는 생각으로 탐탁하지 않게 여겨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나와 동급생으로 고모를 닮은 고종사촌은 새로 이사와 낯설어 하는 나를 위해 때로는 보호자가 되고, 때로는 안내자가 되어 헌신적으로 나를 따랐다. 또 그 밑에 두 살 적은 고모부를 닮은 동생도 ‘형’이냐며 곧잘 따라왔고, 제법 나이가 들어서는 진로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약빠르게 쫓아 다녔던 내가 잘 보였는지, 고모부도 나를 살갑게 대해 주시고, 칭찬에 군색하지 않으셨다. 그러면서 고종사촌들에게 나를 잘 따르라고 타이르기까지 하셨다.

그런 ‘움고모’네가 내 스무 살 즈음에 울산으로 이사를 가셨다. 솥골동네에 땅 한 뙈기 없으니 공업도시로 나가 날품이라도 팔면 살기 좋으리라 여겼던 모양이었다. 또 자라나는 고종사촌들의 앞날도 생각하면 이곳에서 그들이 먹고살 만한 일감이 막막하기도 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떠났던 고모부가 매년 벌초 때 고종사촌들과 같이 왔는데, 그때마다 우리 집에 와 어머님께 인사하고, 밥 한 끼 하시고, 울산 살림살이 사정을 주섬주섬 풀어놓으셨다. 고모부와 ‘움고모’, 고종사촌 동생 모두 공장에 나가 일하고, 월급을 받아와 살림살이가 솥골보다는 좋다는 말씀이 많았다.

몸이 멀면 사랑도 멀다고, 그래저래 시간이 흐르면서 ‘움고모’네가 잊혀졌다. 어느 때부턴 가는 벌초도 안 오시는지 소식이 뜸하더니, 고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내 살기가 솥에 콩 볶듯 하여 그런 소식조차도 염두에 둘 수 없는 형편이 되어 더욱 까맣게 되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고모부네 문중 동래정씨 종가 손녀인 동창생이 찾아왔다. 참으로 반갑고 가슴 뛰는 일이어서 솥골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마을은 군데군데 집들이 쓰러지거나 자취도 없이 사라져 내 기억과 같이 까맣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도랑 건너 있던 ‘움고모’네 집도 흔적조차 없이 고추밭이 되어 있었다. 편찮으신 아버지를 ‘오빠’냐고 자주 찾아와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며 무료한 일상을 달래 주셨던 ‘움고모’. 아버지가 끝내 진갑의 연세에 돌아가시자 상복을 입고 상주가 되어 집안 이리저리 다니시며 일을 돕던 ‘움고모’. 이제는 80도 넘으셨을 연세. 아직은 건강하시다는 기별을 들으며, 인연의 끈이 무엇인지 아른거려 눈앞이 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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