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후 이탈리아는 전승국의 일원이었지만 분위기는 패전국과 같았다. 아드리아 해안과 아프리카에 영토를 넓히려는 목적으로 참전했지만 줄곧 패전만 거듭해 강화회의에서 발언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46만 명의 인명을 희생했으면서도 이탈리아가 원했던 만큼 식민지도 얻지 못하고 아프리카에서 손바닥만 한 영토를 얻었을 뿐이다.

식량부족, 물가폭등, 대량실업, 노동자의 공장점거 등 사회불안 현상이 계속되자 전쟁이 끝나면 나아지겠지 하던 국민의 희망도 사라졌다. 정국도 불안정해서 내각이 밥 먹듯이 바뀌었다. 국민은 의회주의 정부를 불신, 차라리 강력한 정부가 출현해 이 난국을 수습해 주기를 바랐다.

이 같은 국민의 기대에 편승, 나타난 것이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이었다.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당이 당면한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사로 국민의 눈에 비춰졌다. 자본가와 군부, 귀족이 파시스트당의 후원자가 됐다. 제대군인과 도시, 농촌의 중산계급이 파시스트 운동에 대대적으로 참가했다. 무솔리니는 젊었을 땐 열렬한 사회주의자로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 체포되기도 하고 투옥되기도 했다.

사회주의자는 이론을 무기로 앞세우는 자가 많지만 무솔리니는 귀찮은 이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스트였다. 복잡한 정치이론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기가 생각한 대로 무엇이든지 해치우는 강한 기질의 소유자였다.

무솔리니는 국민감정의 미묘한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해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게 하는데 능수능란했다. 국민이 자신을 로마제국의 카이사르로 여기게 만들었다. 파시스트당은 처음엔 사회주의 정책을 강조했지만 정권을 잡자 국가주의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솔리니는 철의 채찍으로 이탈리아를 다스리다 결국 비참하게 몰락했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비대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시장과 시민사회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국가주의”라고 비판, 강펀치를 날렸다. 이론으로 무장된 김 비대위원장의 선제공격은 대여공세에 예사롭지 않은 변수를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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