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를 때나 넓은 고원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현상을 ‘링 반데룽(Ringwanderung)’이라 한다. 안개나 눈보라를 만나거나 등반자가 피로한 상황일 때 나타난다. 등반자는 목표한 곳으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일한 장소에서 원을 그리며 돌고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즉시 방향을 재확인하고, 휴식을 취하며, 기상 조건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그냥 둥글게 빙빙 돈다고 해서 ‘환상방황’이라고도 한다.

우리 경제가 길을 잃고 헤매는 링 반대룽 현상을 보이고 있다. 허둥대면서 이리저리 길을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잠시 앉았다가 정신을 차려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방향을 잃으면서 등산 대장과 대원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른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김&장’ 엇박자다.

‘김&장’은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극명하게 대별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저임금에 대해 김 부총리가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 데 대해, 장 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는 없다고 했다. 또 고용 관련 당정청 회의에서 김 부총리는 경제정책을 되짚어 보고 필요한 경우 수정하는 방향도 검토하겠다고 한 반면, 장 실장은 곧 정책효과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며 믿고 기다리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축사에서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며 J노믹스 3대 경제정책인 일자리와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에 대한 확신에 찬 뜻을 전했다. 장 실장의 견해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 같은 반응은 청와대가 지금의 경제 현실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막대한 재정으로 메우고, 추락하는 경제 지표의 원인을 전 정권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경제 당국과 청와대가 바벨탑 경제로 치닫고 있다.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은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우리 경제의 불신과 혼돈을 부추기고 있다. “청와대에만 들어가면 왜 현실감이 떨어질까”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제가 어디까지 추락할 지 온 국민이 걱정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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