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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전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후, 만주 벌판에서 조국독립을 위한 갖은 신고를 감당하신 선조들은 민주공화국 형태의 정부를 원하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미국의 승전과 임시정부의 활동을 비롯한 많은 독립투사의 헌신으로 마침내 해방을 맞게 되었다. 그 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문물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당시 선구자들은 대다수 기본적으로 유교의 학식을 갖춘 분들이었지만, 너도나도 서양 문명을 익히고 도입하느라 바빴다. 조선은 총 한번 제대로 쏘지 못하고 멸망한 나라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드물 것이다. 신라는 같은 민족인 고려에게 백성의 안녕을 위하여 나라를 넘겼으나, 적국인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경우는 다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조선멸망의 원인으로 유교를 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국을 위하여 해외망명과 정치활동, 무장투쟁, 교육·계몽, 언론·문학 등 갖은 형태의 독립운동을 단행한 선비가 많았지만, 국가적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500년 간 유교를 나라의 통치이념과 최고의 정신가치로 삼았는데, 이 유교가 과연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무엇을 제공하였으며, 또 국운이 쇠잔해 나라가 넘어갈 때 국운 회복을 위하여 어떤 영감을 주고 어떻게 기여하였는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조선을 지배한 성리학은 거대하고 섬세한 철학체계이나, 공리공론에 흐르는 경향이 있었고 유교 자체도 신분의 차별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영훈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은 노비의 수가 국민 전체의 30~40%에 육박한 지극히 비인간적이고 불공정한 사회였다. 양반은 군대도 안 가고 당연히 군포(軍布)도 안 내었다.

최근 우리가 되살려야 할 소중한 정신가치로 유학과 선비정신을 일컫는다. 효제충신(孝弟忠信)과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가치를 인정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한 선비들은 대체로 예의 바르고 향학열이 높았으며,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높일 줄 알았으며 국난(國難)에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정의감이 있었다. 선비는 시와 예의와 음악에 밝은 교양인이며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을 잘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였다. 그런데 나라는 가난하고 국방의 의지도 없었다.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려면 먼저 유교가 우리에게 준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잘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그 핵심적인 요소로 인(仁)의 이해와 실천을 들고 싶다. 알다시피 유학에서 발달해 나온 성리학은 경(敬)의 이해와 실천을 매우 중시한다. 경(敬)은 실로 인간의 수양과 대인관계, 업무의 처리와 일상생활의 요체가 되는 덕목이다. 경(敬)은 경건하고 엄숙하며 안정되고 침착하며 진실하고 성실한 태도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공자의 가르침의 핵심은 인(仁)이었다. 인(仁)은 사랑이요 관용이며 공감과 배려의 성격을 띤 마음가짐이다. 인과 경의 철학적 의의와 궁극적 의미는 서로 통한다. 그러나 현실적 인간관계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을 띤다. 조선시대는 경과 예의를 중시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인과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되지 못했다고 본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인 유학의 가치와 선비정신을 이 시대에 걸맞게 되살리려면 경은 물론 인을 실용화할 수 있는 방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인의 가치와 성격을 규명하고 그 현대적 개념과 현실적 실천을 경의 철학과 더불어 잘 조화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 발전 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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