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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맛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등록일 2018년08월29일 17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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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조금 놓아버리면 조금의 평화가 올 것이고 크게 놓아버리면 큰 평화가 올 것이며 완전히 놓아버리면 완전한 평화와 자유를 얻을 것이다’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은 우리 삶의 자세에 대한 궁극적인 답일 수 있다. 나를 놓는다는 것은 나를 비운다는 말과 상통하며 그것은 결국 나로부터 내가 해방된다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다만 이미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무언가를 놓는 일에 평생을 소비한다. 비운 뒤에 오는 평화를 맛보기도 전에 다시 무언가로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러니까 평생 비우기 위해 갈등하고 채우기 위해 또다시 고민하는 것이다.

콘크리트 바닥이 금이 가는 까닭은/ 단단한 등딱지가 쩌억, 쩍 갈라지는 까닭은/밑에서 쉬지 않고 들이받는 머리통들이 있기 때문이다./콘크리트가 땅을 덮고 누르기 전/그곳에 먼저 살던 원주민이 있기 때문이다.(‘풀’ 부분, 김기택) 김기택의 시를 통해 놓음의 의미를 짚어보자면 무언가가 끝내 놓아지지 않을 때 이것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본래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을 바꿔본다면 나를 놓거나 비우는 일이 조금은 쉬워질 수도 있다.

어느 날,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는 길에서 갑자기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듯 휘청거려 본 적 없는가. 내가 날마다 서 있던 길이지만 갑자기 낯설게 보이고 내가 걸어가지만 다른 사람의 생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느껴본 적 없는가. 이 세상에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은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다만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잠시 빌려 쓰던 것이니 돌려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느닷없지만,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말은 그것 또한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뒤돌아보는 일에 익숙하다. 먼 길을 걷다가도 뒤돌아보고 버스를 타고도 떠나온 자리를 한 번쯤 뒤돌아보는 것이다. 내가 서 있던 곳에 서 있던 사람이 정말 나였을까, 정말 나였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려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나온 길 위에 서 있던 나도 내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은 그 순간의 자신을 소유할 수 있다. 돌아보며 정말 내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공교롭게도 그것은 내 것이 되는 것이다. 희한한 일은 발자취마다 내 것이라고 우겼던 사람은 정작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움과 채움은 같은 방 안에 있다. 깜깜한 방 안에 들어서서 형광등 스위치를 올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채워지는 순간과 비워지는 순간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콘크리트 바닥을 끊임없이 들이받는 원주민이 있듯 어둠은 빛의 이면에서 끊임없이 그 경계를 들이받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빛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어둠은 자기를 비우되 빛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다. 그러므로 채우려는 순간 텅 빌 것이며 비우려는 순간 채워진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인간 삶의 이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차례대로 꺼내 보자. 돌아온 계절의 옷을 꺼내듯 차근차근 꺼내 옷장을 텅 비워보자. 그다음은 텅 빈 옷장 바닥을 더듬듯 머릿속에 손을 넣어 더듬어보자. 꽉 찼던 옷장을 비우고 난 다음의 가벼움이 거기에 있는가. 충분히 잘 비웠다면 당신은 충분한 평화를 맛보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까 오늘 당신이 행복해 지고 싶다면, 그 마음에 가득 찬 것을 먼저 놓아야 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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